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단조공장에 설치된 17000톤 프레스기가 신한울 3∙4 주기기 중 하나인 증기발생기 단조 소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지난 15일 경상남도 창원에 위치한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 내 단조공장. 공장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크레인이 버스 한 대 만한 크기의 쇳덩이(합금강)를 집더니 높이 23미터·너비 8미터 크기의 초대형 프레스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170톤에 이르는 쇳덩이는 매만지기 좋게 1200도로 새빨갛게 달궈진 상황. 순식간에 찜질방에 있는 듯한 열기가 공장 내부로 퍼졌다. 집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매니퓰레이터가 크레인으로부터 쇳덩어리를 건네받아 화로와 같은 가열로에 위치시키니, 망치 역할을 하는 프레스가 위 아래로 움직이며 육중한 쇳덩이를 단련했다. 프레스는 1만7000톤 규모, 성인 남성 24만명이 동시에 누르는 것과 비슷한 힘을 갖고 있다. 쇳덩이 부속물들이 빨간 불꽃을 튀겼다.
이 쇳덩이는 일정 기간 가공을 거쳐 신한울 원전 3·4호기 증기발생기에 들어가는 부품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날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정인연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원공장 내 단조공장에서 신한울 원전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식을 진행했다. 약 5000여명(협력사 직원 포함)이 일하는 창원공장은 여의도 1.5배 규모로, 단조공장, 원자력공장, 터빈공장 등이 모여 있다.
15일 두산에너빌리티 신한울 3∙4 주기기 제작 착수식.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3월 한국수력원자력과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각 2032년, 2033년 경북 울진군에 세워질 신한울 3·4호기에 들어갈 주기기(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 등 핵심기기)를 제작해 공급한다. 약 2조9천억원 규모다. 이달 2조원 규모의 보조 기기(펌프, 배관, 밸브, 케이블 등) 발주도 시작됐다. 2017년 말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에 따라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이 중단된 바 있는데, 지난해 7월 원전산업 생태계 복원을 국정과제로 삼은 윤석열 정부는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이날 축사에 나선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원전 생태계가 완전한 정상궤도에 진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아침 산업부가 전기요금을 주택용 4인가구 월평균 기준 3020원(부가세 등 포함) 가량 인상한다고 발표한 뒤다. “오늘 아침 무거운 마음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고 창원에 내려왔습니다. 지난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 등으로 한전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누적됐고 결과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습니다. (…) 이러한 가운데 지난 3월 말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공급계약은 원전 생태계 완전 정상화의 신호탄이 됐습니다.”
이창양 장관은 전기요금 인상을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고 콕 짚었다. 그러나 원자력이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문재인 정부 당시 2019년 25.9%에서 2020년 29%로 늘어나, 석탄이나 가스, 신재생 등 다른 전력원들에 견줘 가장 크게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산업부는 탈원전 정책과 전기요금은 관련 없다고 했었다. 현재 수십조원이 쌓여 있는 한전 적자는 이후 석유와 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
아울러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로 인해 그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중소·중견 원전기업에 미칠 긍정적 효과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기기 제작을 위해 국내 460여개 원전 협력사와 협업한다. 지난해 320억원 규모로 일감을 발주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추가적으로 2200억원의 일감을 발주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단조공장에 설치된 17000톤 프레스기가 신한울 3∙4 주기기 중 하나인 증기발생기 단조 소재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착수식에 등장한 170톤 쇳덩어리는 2~3주 동안 단조 작업과 6~9개월 공정을 거쳐 53톤의 주단소재로 만들어진다. 이 소재들을 용접·조립해 23미터·무게 775톤에 달하는 증기발생기가 만들어진다. 중형차 520여대와 맞먹는 무게다. 증기발생기는 발생한 열로 증기를 발생시키는 원전 주기기(핵심 기기)의 하나다. 원자로, 터빈발전기 등도 제작해 신한울 3·4호기에 공급할 예정이다. 창원공장에 속한 원자력공장은 이같은 핵심 주기기들이 조립·제작되는 현장으로, 현재까지 원자로 34기, 증기발생기 124기를 국내·외 대형 원전에 공급한 핵심 노하우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원자력공장 앞 외부 공간에는 주단소재 20여개가 나열돼있었다. 2017년 제작돼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으나 신한울 3·4호기 제작 중단으로 5~6년 동안 보관한 것들이다. 이동현 원자력공장 공장장이 부품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중간 공백이 있어서 보관하고 있고요. 산화 방지를 위한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신한울 3호기 제작이 재개됐기 때문에 1년 이내 전부 다 공장에 입고시켜 각 부품별로 제작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원자력공장에서 직원이 교체형 원자로헤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지난해 12월 신고리 5·6호기 주기기를 납품한 뒤 올해 3월 신한울 3·4호기 제작 착수 전까지 원자력공장은 한산했다. 원자력공장 가동률이 20~30%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고 한다. 많을 때는 350여명(이하 기술직 기준)이 일하던 공장 인력은 한때 150~160명까지 줄었다가 현재 200여명정도가 일하고 있다.“가동률이 저조할 때는 많은 인원들이 저희 공장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내년부터 인력을 충원해서 새로운 수요를 맞추려고 합니다.”(이동현 공장장)
두산에너빌리티는 소형모듈원전(SMR) 제작에 본격 착수하면 내년도 상반기에는 공장을 ‘풀가동’ 할 수 있을거라 기대한다. 지난 3월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소형모듈원전 기업인 뉴스케일파워와 소형모듈원자(SMR) 소재 제작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원자력공장의 작업장(베이·bay) 5개 구역 중 2개 구역은 오는 6월 소형모듈원전을 위한 용접·조립 공간으로 개조된다. 정부도 이날 소형모듈원전(SMR) 설계 기술과 첨단 제조기술 등을 확보하기 위해 중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그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기자재와 기존 원전 교체물량 등을 주로 작업해왔는데, 신한울 3·4호기 제작, 소형모듈원전 등으로 내년도 상반기 공장은 풀로 돌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