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최초 직장어린이집인 서울 종로구 재동의 롯데백화점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아이들을 인솔해 걸어가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더불어 행복한 세상] 좋은 일자리 프로젝트
회사 다닐 만해요?
1부 일과 삶의 균형
(5) 롯데쇼핑
회사 다닐 만해요?
1부 일과 삶의 균형
(5) 롯데쇼핑
마트 직원에게도 ‘저녁’이 올까요?
자정까지 환하게 불 밝힌 마트, 퇴근 시간 뒤에도 쇼핑할 수 있는 백화점, 24시간 문 여는 편의점. 밤을 잊은 공간에 들어서면 피곤한 표정의 직원들과 마주치곤 한다. 야근이 일상이고 주말이 더 바쁜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문제는, 개인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문제에 가깝다.
유통업계 일자리는 장시간 노동과 높은 매출 달성 스트레스, 다른 업종에 비해 낮은 임금이 특징이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도소매업의 한 달 평균 근로시간은 172.9시간, 월평균 임금은 329만원으로 금융·보험업(164.3시간, 549만원), 교육서비스업(151.5시간, 348만원), 출판·방송·통신업(164.3시간, 401만원)에 견줘 오래 일하고 월급은 덜 받는다.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본사 정규직부터 입점업체가 고용한 아르바이트까지 직원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 본사 정규직에는 남성 비중이 높고 매장 비정규직에 여성 비중이 높다 보니 성별 임금 격차도 높다. 백화점, 마트 등의 일자리 질을 국내 유통업체 최강자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분석해봤다. 아울러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주와 동네슈퍼 사장님의 하루도 분석해봤다.
롯데쇼핑 주요 키워드
백화점 남성·마트 여성 임금차 커
노조 조직률 낮아 깨기 어려워 여성 비중 68%지만 과장급 11%
휴일근무·늦은 퇴근 장시간 노동
다섯 중 넷 “회사 추천 않겠다”
‘영업시간 제한’ 정책적 고려를 ■ 주말근무, 잦은 행사와 매출 압박 롯데쇼핑 전·현직 직원 659명이 평가한 잡플래닛 자료를 보면 특히 직원들의 ‘업무와 삶의 균형’ 만족도가 5점 만점에 2.02점으로 5대 그룹 계열사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지인에게 회사를 추천하겠다는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업무와 삶의 균형’ 만족도 평가에서는 특히 영업·제휴, 유통, 정보기술(IT), 마케팅 직군 직원들의 점수가 1점대로 매우 낮았다. 업무와 삶의 균형에 대한 만족도는 여성(2.07)보다 남성(1.94)이 더 낮았다. 회사 단점으로 꼽은 키워드에는 근무시간, 주말, 보수적, 군대, 퇴근, 야근, 연봉, 출근, 고객 등의 단어가 많았다. 2012년 대구지법에서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은 백화점 직원의 사례는 일상적인 연장근무와 주말근무로 삶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휴무일에도 회사 호출이나 여러 행사 때문에 동원되는 근무 환경의 문제를 보여준다. 입사 9년차, 40대 초반인 그는 2010년 ‘파트 매니저’에서 ‘파트 리더’로 승진한 지 6개월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골프장에서 우수고객 행사를 치른 날이었다. 쓰러지기 전 3개월 동안 그는 주말근무 뒤 휴무일인 월요일, 화요일에도 서울 본사로 출장을 가거나 부산에 가서 회사의 시험을 치는 등 회사 업무에 동원됐다. 마지막 달에도 야근이 반복됐고 휴무일에도 우수고객 행사를 위해 회사나 골프장으로 출근을 했다. 마지막 1주일은 휴일 없이 일하며 매일 야근을 했고 행사 당일에는 점심식사도 하지 못하고 일하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상태가 되어서야 귀가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법원은 그가 담당 분야의 매출이 감소할 경우 영업관리 책임자인 자신의 인사고과에 반영되고 연봉이 줄어드는 불이익이 있어 부담을 느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롯데쇼핑의 늦은 퇴근시간, 높은 노동강도, 매출에 대한 스트레스, 군대식 조직문화 등은 모두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고 뇌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롯데쇼핑은 백화점 부문을 중심으로 ‘일과 삶의 균형’과 관련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올해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했고 2014년 8월부터 자신이 선택한 근무제의 퇴근시간이 되면 20분 뒤에 컴퓨터가 꺼지도록 하는 ‘피시 오프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설명은 다르다. 컴퓨터가 꺼지는 걸 막으려면 연장근무를 위한 기안을 올려야 하는데 이 경우 수당을 받게 돼 상급자의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결국 컴퓨터가 꺼지는 걸 막으려고 시스템을 변경하는 ‘꼼수’가 횡행한다. 본사 직원들 사이에는 쉬는 주말에도 여러 매장을 돌아보는 업무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심지어 1박2일로 지방 백화점 등을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롯데마트도 매출 대비 인건비가 높으면 점장이 압박받게 되어 있는 구조여서 연장근무 수당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매장이 문을 여는 영업시간 때문에 야근과 주말근무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유통업계 일자리 질과 관련해서는 정책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영국의 경우 백화점이나 할인매장 등 대형 상점이 일요일에 6시간 이상 영업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퇴근시간 맞춰 PC 오프제
직장어린이집 3곳서 휴일보육 ■ 업계 최초 어린이집·감정노동 매뉴얼 롯데백화점은 2010년 업계 최초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고 2014년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도 처음으로 내놨다. 주말에도 일하는 유통업계 특성상 직장어린이집에서 휴일 보육도 실시한다. 다만 서울·부산의 어린이집 세 곳의 정원이 모두 99명에 불과해 수용률에 한계가 있다. 육아휴직 사용률도 최근 달라지고 있다. 2014년부터 육아휴직 최대 기간을 2년으로 늘렸고 임신 전체 기간에 ‘근로시간 단축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롯데백화점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2년 6명에서 2015년 52명으로 늘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42명의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했다. 하지만 최근 롯데마트에서는 육아휴직 뒤 복귀하자 직책이 낮아진 남성 직원이 노동청에 신고를 했다. 롯데마트는 이에 대해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도 휴직 뒤 직무 변경 등 불이익을 받아 그만두는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선포한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은 판매직원, 콜센터 직원 등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여러 업종에 자극을 줬다. 올해 롯데인재개발원은 ‘워킹맘을 위한 생활지침서’를 펴내기도 했다. 한 직원은 “각종 정책을 만들고도 수직적 분위기, 보고 중시 문화 등의 토대가 바뀌지 않아 제대로 활용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지선 허승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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