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네이버와 많이 닮았다. 여론을 호도한다고 정치권의 질타를 똑같이 받고 있는 것마저 닮았다. 이들은 정보를 밖에서부터 끌어와 이를 자양분 삼아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키운다. 밖으로부터의 정보란 타인이 만든 뉴스와 같은 콘텐츠일 수도 있고, 타인 그 자체, 즉 사생활과 같은 개인 정보일 수도 있다.
일종의 정보의 양식(養殖) 시스템인데, 밖에서 가져온 남의 정보는 원자재이자 일종의 먹이가 되어, 이 가두리 양식장 안에 공급된다. 이 먹이를 ‘원천정보’라 하자.
한편 타인의 일상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거나, 뉴스를 보며 댓글을 다는 일련의 행위는 그 자체로도 문자 정보를 생성하지만, 그 행위가 정보라는 대상과 행위자 모두에게 가중치를 부여한다. 정보와 회원 모두에 대해 미인 컨테스트가 벌어진다. 정보의 효과를 소비자 스스로 걸러낼 수 있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회원이 어떤 정보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게 되니 그 자체로도 광고주들에게 매력적인 정보가 쌓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반응은 양식장 안에서 계속 머물게 하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우리는 좋아요에 짜릿해 하며 내 댓글이 베스트 댓글에 오르는 일에 흥분한다. 그리고 그 짜릿한 흥분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러 우리 스스로 재방문한다. 바로 세상에 대한 리액션, 즉 ‘반응정보’가 탄생하여 축적되는 과정이다.
이 반응이 주는 흥분은 한 번 맛보면 중독성이 있다. 이 흥분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들도 어렵지 않다. 좋아요와 댓글 추천을 얻기 위해 무리한 정보를 퍼나르거나 무모한 반응을 하곤 한다. 자극을 부르는 행위는 쉽사리 통용된다. 반응에 매긴 점수의 마력 덕이다. 좋아요 수, 댓글 추천 수 등 숫자와 순위는 비슷한 자극을 원하는 이들을 게임처럼 경쟁하게끔 한다. 원천정보는 먹이감의 역할을 훌륭히 한 채 유통기한이 지나면 조용히 묻히게 되고, 다시 새로운 정보가 밖으로부터 부어지며 반응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게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페이지뷰나 어텐션과 같은 지표는 급등하게 되고, 이 공간은 어느새 가장 뜨거운 공론장으로 홍보된다. 이 공간에서의 광고 가치는 그렇게 덩달아 올라간다.
반응정보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가짜뉴스에서 댓글공작까지 어설픈 작업으로도 여론의 향방이 바뀐다고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정보의 양식장이 만들어내는 반응 정보의 규모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뉴스 원문보다 오히려 댓글을 더 재미있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TV프로의 네티즌 반응을 받아 적어 신문기사를 거저 쓰기도 한다. 하늘 아래 진짜 오리지널이 어디 있으랴, 세상은 모두 전례에 대한 리액션이자 리믹스일뿐이라 말하는 듯, 반응정보는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 양식이 되어 간다.
세상이 이렇다 보니 진실은 검색 한 번이면 나오더라도, 적나라한 가짜뉴스를 퍼 나르며 뜨겁게 반응한다. 오히려 즐기는 듯싶다. 속 시원히 반응할 수만 있으면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곳, 반응정보의 양식장은 오늘도 북적거린다.
원천정보는 만들기 어렵다. 익명·실명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의 기록이든 창작품이든 르포든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시간을 들일 때 만들어진다. 반응정보는 이를 소비하며 손쉽게 쏟아져 내린다. 그렇기에 사회의 가치판단이 전자가 아닌 후자에만 의존할 때, 그 조작을 위한 동원은 조금 더 손쉬워진다.
그 어떤 사건이 터져도 가두리로 성장한 이들이 갑자기 반응정보를 버릴 리는 없을 것이다. 원천정보의 가치를 구분해 내지 못하고 오로지 반응정보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양식장에서의 삶. 작품보다 인상비평이 득세하는 사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딘가 아니지 싶은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가두리의 수난이 시작된 이유는 이 느낌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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