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투자 피해자들이 지난 9월19일 경기도 성남시 우리은행 위례신도시점을 방문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남/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했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큰 기업들이 어찌 움직이는지 압니다. 내부 대응팀을 꾸리고 로펌을 붙여서 피해 고객에게 유리한 건 다 감추겠지요. 직원들은 고객 앞에서 ‘죄송하다’고 말은 하겠지만 나중에 법적으로 책잡힐 증언을 하지 않도록 대응 교육도 받곤 합니다. 디엘에프(DLF·파생결합펀드) 사태가 터졌을 때 은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팔순이 넘은 장모님은 안전한 예금과 다름없다는 말에 속아서 가입을 했어요. 서둘러 은행 직원들을 만나 다그친 덕분에 잘못을 시인받고 녹음도 하고 했습니다.”
디엘에프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가 터졌을 때 피해 고객들의 대처는 사뭇 달랐다. 앞서 고객처럼 이른바 ‘뭘 좀 아는’ 가족들이나 피해자 본인이 나서서 ‘불완전판매’ 피해를 입증할 만한 서류와 증언을 재빨리 챙긴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고객도 허다했다.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던 고령의 한 피해자는 사태가 상당히 진전되도록 은행에서 당연히 받았어야 할 ‘상품설명서’ 서류 한장을 받아내질 못했다. “은행에 가서 무슨 서류가 있다는데, 난 디엘에프 통장밖에 없는데 뭐든 좀 달라고 했더니 은행에서 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보라고 하데요.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안다고, 꼭 챙겨주겠다고요. 아들아이에게 전화로 얘기는 해봤는데, 멀리 사는데다 자기 식구 먹고살기 바빠서 당장 쫓아와줄 처지가 아니거든요.”
지난 14일 금융위원회가 디엘에프 사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답답함은 풀리지 않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다음달 열릴 정식 분쟁조정위원회에 앞서 디엘에프 피해자들과 은행 직원을 불러 3자 면담 등을 진행했으나, 금융당국과 은행에 대한 불신만 키운 이들도 상당수다. 이른바 ‘뭘 좀 아는’ 피해자들이야 은행을 상대로 다퉈볼 ‘증거’를 확보했지만, ‘뭘 잘 모르는’ 피해자들은 ‘나만 아는 진실’을 입증할 길이 없어서 답답함을 안고 돌아서야 했기 때문이다. “은행 시시티브이(CCTV)는 영상 보관 의무 기한이 짧아서 지금 남아 있는 게 없다고 해요. 3자 대면을 가보면 은행 직원은 다 설명하고 다 서류도 줬다고 하거든요. 나는 받은 게 없는데, 나는 들은 게 없는데…. 내 말은 일방적 주장이라는데, 내가 어떻게 입증을 해야 하나요? 애초부터 시시티브이 영상이든 관련 서류든 다 은행이 가지고 있는데…. 환장할 노릇이에요.”
금융위는 향후 사모펀드의 최소투자금액 문턱을 높이고, 은행에서 고난도 투자상품 판매를 제한하기로 하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방안’을 줄줄이 발표했다. 하지만 기실 발표된 대책 모두가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소’에 대한 배상을 다투면서 가장 답답해하는 이른바 ‘입증 책임’의 문제 등 핵심 대책 일부는 국회의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여부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현재 정부안을 포함해 11개의 제정법과 관련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이는 2012년 18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20대 국회에 이르도록 8년째 표류 중이다. 이번 국회에서도 논의 진도는 느렸다. 지난 3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한 차례 쟁점 논의를 한 뒤 국회 공전으로 7개월여가 지난 10월 하순에야 한 차례 더 논의를 진행했을 뿐이다. 이때도 여야 이견은 컸다. 현재 정부 법안과 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불완전판매 등에 대해 금융소비자로부터 금융회사로 입증책임을 전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정무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잘못했다는 걸 입증해야지, 잘했다는 걸 어떻게 입증하나” “기업 활동을 위축한다”고 반박한다.
여야 지도부는 최근 민생법안 속도 내기를 논의하며 산업활성화 관련 데이터 3법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는 합의했다. 그러나 디엘에프 사태에도 경제민주화법의 주요 의제로 꼽힌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대한 논의 얘기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오는 21일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가 다시 열린다. 하지만 경기위축 속 ‘경제활성화’가 최우선 의제인 분위기라서 이와 별도로 지켜져야 할 가치인 ‘소비자 보호’가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피해자들은 묻는다. “디엘에프 사태는 금융권의 무책임과 탐욕, 불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보기 드문 사건입니다. 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 3천여명을 지역구 표로 환산해봐야 국회 눈엔 별게 아닌 모양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로펌을 낀 금융사와 다퉈야 하는 금융소비자의 처지가 다음번 금융사고라고 달라질까요?”
정세라 경제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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