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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주주도 아닌 국힘·대통령실이 왜 민간기업 KT에 ‘불편한 심기’?

등록 2023-03-29 06:00수정 2023-03-29 14:50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전직 KT CEO와 보좌진들 얘기 들어보니
새 정부 ‘실세’가 KT에 관심 갖는 속내는
캠프서 고생한 사람들 밥 먹을 자리 발굴?
서울 광화문 케이티(KT) 사옥.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케이티(KT) 사옥. 연합뉴스

지난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케이티) 구현모 대표는 자신의 ‘아바타’ 윤경림 후보를 세웠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이는 내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권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대통령실은 “그것(공정·투명한 거버넌스)이 안되면 조직 내에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그 손해는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이뤄진 이 두가지 행위를 놓고, 케이티(KT) 이사회가 차기 대표이사(CEO) 공모 지원자를 심사해 전·현직 4명만을 면접 대상자로 추린 것에 정부·여당이 함께 ‘불편함 심기’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당시 케이티 이사회는 ‘구현모 대표 연임’을 백지화한 뒤 공모를 통해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다시 고르는 중이었다. 케이티 이사회는 이후 윤경림 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선정해 공시했으나, 주주총회를 나흘 앞둔 지난 27일 윤 후보가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22일 이사들과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더는 못버틸 것 같다. 케이티가 더 망가질 것 같다”고 토로하며 후보 사퇴 의사를 밝혔다. 버티기 힘든 외압을 받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 완전 민간기업 KT에 ‘감 놔라 배 나라’, 왜?

케이티는 1981년 12월 체신부에서 ‘한국전기통사’로 분리됐고, 2002년 8월 완전 민영화됐다. 정부가 갖고 있던 지분을 다 팔았고, 케이티는 구제금융 시기 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 방식으로 뉴욕증시에도 상장됐다. 지금은 정부기관에 속하는 국민연금이 케이티의 최대주주(2월27일 기준 8.53% 보유)일 뿐, 정부가 직접 가진 케이티 지분은 전혀 없다.

그래서 의문이 인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대통령실은 무슨 자격으로 케이티 이사회의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정 결과에 함부로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는 것일까. 윤경림은 도대체 어느 쪽의 외압 느낌 때문에 케이티 대표이사 자리를 눈 앞에 두고 중도 하차를 한 것일까. 국민의힘 의원들과 대통령실은 왜 케이티 이사회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에 자꾸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궁금함은 이전에도 정권 교체 때마다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 때마다 케이티와 포스코 등에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돼서다.

28일 <한겨레>가 케이티 전직 최고경영자(CEO)와 비서실·대외협력 출신 임원들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케이티는 새 정권 출범 때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겪어왔다. 먼저 ‘정권이 바뀌었으니 물러나는 게 좋을 것’이란 얘기가 돌고, 못들은 체 하거나 버티는 모습을 보이면 ‘시민단체’ 등의 고발과 검찰의 ‘요란한’ 수사가 이어진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이런 일이 있었고, 박근혜 정부 출범 뒤 반복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는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후보가 정해지면 출처조차 불분명한 ‘정치권 쪽 메시지’라는 게 돌고, 이후 당사자 사퇴로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임 결과가 갑자기 엎어지는 상황이 벌써 세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 “‘캠프에서 고생하신 분들 많을텐데…’ 화답 했어야”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전직 케이티 최고경영자와 비서실·대외협력 출신 임원들이 전하는 말에서 속내를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뒤, 대선 캠프 출신으로 실세로 꼽히는 인사와 서울 플라자호텔 중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 중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놨다. ‘주변에서 정권이 바뀌었으니 물러나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안된다는 조언도 있고.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케이티 경영을 잘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더욱 분발해서 일자리도 늘려주시고, 해주세요’라고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서 식사를 마쳤고, 격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고, 요란한 조사를 받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나서 생각하니, 내가 어수룩했다. 실세의 격려를 받고 화답을 못했다. 식사 자리에서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해 대선 캠프에서 고생하신 분들이 많을텐데, 저희가 기여할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몇 분 명단을 주시면 적극 검토하겠다’ 식의 화답을 했어야 했다. 그러면 실무자끼리 의논해 캠프 출신들을 받아주고, 내가 그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도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격려해줘서 고맙다는 말만 하고 돌아섰으니, 상대편에서는 ‘이 양반이 내가 누구인줄 알고.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라고 괘씸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뒤에 그 쪽 인사 한 분이 ‘그렇게 눈치가 없냐’고 한마디 하더라.”

이런 사례는 다른 정부 출범 뒤에도 있었다. 당시 최고경영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던 전직 케이티 임원이 전한 말이다. “새 정부 출범 뒤 대통령 국외순방 경제협력단 명단에서 잇따라 제외됐고, 언론에선 이를 ‘물러나라는 신호’로 해석해 보도했다. ‘선물’을 준비해 당시 측근으로 꼽히던 인사를 찾았는데, 선물 꾸러미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라인을 통해 들으니, 그분이 그동안 함께 일해온 보좌진의 밥 먹을 자리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 여러 명을 임원급으로 받았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새 정부 ‘공신’들의 고민꺼리

<한겨레>가 만난 케이티 전직 최고경영자와 비서실·대외협력 출신 임원들은 한결같이 “새 정부 출범 뒤 ‘공신’들의 고민꺼리 가운데 하나가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밥 먹을 자리’(취직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일을 당하고서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좀더 뻔뻔하고 솔직하게 “몇 명 받아줄까요?”라고 물어보겠다고 했다. “경쟁 통신사들도 물밑에서, 조용하게 그렇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전에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캠프 출신들이 가장 가고싶어 하는 곳이 대통령실(예전엔 청와대)이고, 이어 정부기관, 정부 산하기관, 공사 등이다. 기여 정도에 따라 수장, 고위임원, 감사, 사외이사, 직원 등으로 간다고 했다. 지휘하던 ‘보스’가 가고 싶은 곳과 자리 신청과 함께 이력서를 받는다고 했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이런 자리들을 ‘전리품’ 취급하며 비우게 하고, 버티면 각종 회의 참석자 명단에서 배제하거나 감사·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새 정부 통치 철학 공유 차원이란 명분을 앞세우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도 전 정부 때 경험을 가진 누군가가 서울 안국동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들을 대상으로 이력서를 받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실세 이름을 팔아 취직을 시켜주면, 연봉의 10% 가량을 챙겨주는 게 이 바닥의 생리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챙겨야 할 사람이, 이력서가 많으면 ‘선’을 넘어 민간기업까지 넘본다. 금융회사는 물론 케이티와 포스코 등까지도 정권 교체 때마다 최고경영자가 ‘낙하산 인사’로 바뀌는 흑역사가 반복되는 게 대표적이다. 이를 관행처럼 받아들이며 반발이 적거나, 새 정권의 힘을 빌어 영달을 꾀하려는 임원들이 많은 곳이 대상이다. 케이티에서도 새 정부 출범 뒤 낙하산 인사가 올 때마다 이사들이 알아서 ‘카펫’을 깔았다는 평가가 많다. 심지어 낙하산으로 오는 인사가 정관상 케이티 대표이사 조건에 부합하지 않자 정관을 바꿔 가능하게 한 전례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낙하산 인사는 대선 캠프 출신에서 대통령실 출신으로 넓어진다. 케이티에만도 김대중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 비서관·대변인 출신이 각각 전무로 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간부와 국민의힘 의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이석채 전 케이티 회장을 두고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케이티 대표이사 자리를 ‘꿀보직’으로 여길 수 있는 새로운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삿돈으로 김영삼 정부 시절 인사들을 살뜰히 챙겼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이 회장 측근에서 근무한 전직 고위임원은 <한겨레>에 “회장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내부 불만이 많았다. 회장 연봉, 케이티 본사와 계열사·관계사 고문·자문에게 지급되는 인건비와 부대 비용, 각종 포럼 모임에 들어가는 자문료, 정치권 인사 경조비 등을 더하면, 이전 대표이사 때에 견줘 연간 수백억원이 더 들어갔다”고 밝혔다.

최근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공모가 세번째로 진행 중일 때, 이명박 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지원자가 유력 후보로 언론에 보도되자 케이티 내부에서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를 봉양해야 할 것 같다”는 우스개 소리가 돈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고 볼 수 있다.

■ 이번에는 왜 엎어지고 엎어지고 또 엎어졌을까?

그럼 이번에는 어쩌다가 무려 세번씩이나 ‘파토’가 났을까. 이번에는 왜 사외이사들이 새 정부 실세 쪽의 의중을 파악해 카펫을 까는 구실을 하지 않았을까.

케이티 내부 사정에 밝은 전직 고위 임원은 “이전과 달라진 부분을 굳이 꼽는다면, 이사회를 사실상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사외이사들이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강철·유희열·김대유 사외이사가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이거나 고위 관료를 지낸 이력이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케이티 사외이사로 선임됐고, 이강철 사외이사는 지난 1월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사퇴했다. 같은 맥락에서 구현모 대표의 경영고문을 맡아온 전 케이티 최고경영자의 재임 시기가 참여정부 때라는 점까지 거론된다.

한마디로 케이티 이사회와 경영진이 정치색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 정부 쪽이 메시지를 보내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얘기다. 더욱이 케이티 쪽은 ‘낙하산 방지’와 ‘경영의 연속성 확보’를 명분으로 경영진·이사회·제1노조가 같은 목소리로 울타리를 치고, 언론 플레이까지 해왔다. 케이티 이사회 사정에 밝은 케이티 관계자는 “저쪽(새 정부 실세)의 의중을 받지 못했고, 협의 통로도 없었다고 한다”며 “세번째 공모를 할 때 서류심사 과정에서 34명 지원자 가운데 여당 정치인과 관료 출신들을 일거에 모두 배제하고 전·현직 4명만을 면접 대상자로 추리는 것을 보고, 정면 대결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케이티 전직 최고경영자는 “참여정부 출신들이 이사회를 주도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새 정부 쪽에서 뭔가 메시지를 보내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사회까지 개선 대상으로 삼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강철 사외이사 사퇴 때 참여정부 출신 인사로 분류되는 다른 두명도 함께 물러나야 했다”고 말했다. 결국 둘도 28일 사퇴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모습이 밖으로는 ‘카르텔’로 비쳐지며, ‘그들만의 리그’ ‘모럴 해저드’ 비판을 해댈 수 있는 빌미가 됐다는 지적이다.

유사 상황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 전직 최고경영자와 비서실·대외협력 출신 임원들의 경험을 토대로 짐작해볼 뿐, 국민의힘 의원들과 대통령실이 케이티 차기 대표이사 선임에 ‘요란하게’ 목소리를 내는 속내는 여전히 베일 속이다. 다시 진행될 케이티 대표이사 공모 때는 어떤 행태가 벌어질지 주목된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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