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의 ‘퇴직금’은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 이웅열 코오롱 전 회장은 지난해 경영 퇴진을 선언한 뒤 410억원을 퇴직급여로 받게 됐다. 최근 주주총회에서 밀려난 조양호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받게 될 퇴직금은 61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은 자신의 경영 실패로 중국계 기업에 매각된 금호타이어에서 퇴직금 22억원을 결국 받아냈다. 재벌 회장들의 퇴직금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규모는 물론이고, 꽁꽁 감춰진 산정 기준과 경영 실패는 반영하지 않는 자의적 지급 결정 등이 그렇다.
4일 <한겨레>는 국내 주요 대기업의 임원 퇴직금 산출 방식을 살펴봤다. 대부분 기업은 내부에 임원 퇴직금 ‘계산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퇴직 임원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주주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코오롱과 현대자동차 등은 <한겨레>에 “분명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따르고 있다”면서도 “계산식을 알려줄 수는 없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임원 보수 규정을 개정해야 했던 연도의 주주총회 정관 변경 안건, 회사 고위 관계자의 설명, 이전 퇴직금 지급 사례 등을 활용한 ‘역계산’ 등을 통해 주요 기업들의 계산식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핵심은 지급 ‘배수’다. 평범한 노동자들의 법정 퇴직금 계산식에는 없는 마법의 열쇠다. 법정 퇴직금, 즉 법에 따라 퇴직 노동자에게 반드시 지급돼야 할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 하루 평균 임금’에 30(일)을 곱하고 다시 재직일수를 곱한 뒤 365(일)로 나눠서 계산한다. 복잡해 보이지만 월평균 보수에 재직한 기간(년)을 곱하는 개념이다. 1년을 일하면 1개월치 월급이 퇴직금으로 적립된다고 보면 된다.
재벌 회장들의 퇴직금 계산식엔 ‘퇴직 시 직급에 따른 배수’가 곱해진다. 배수는 대개 이사회가 정한다. 이사회는 회장이 장악하고 있다. 배수는 총수인 회장과 그 밖의 임원에게 차등 적용되는 게 일반적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대표이사 회장은 6배수를 적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파악된 배수 중 최고다. 조 전 회장은 1년 일할 때마다 6개월치의 보수가 퇴직금으로 쌓인 것이다. 이에 따라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은 법정 퇴직금(연봉 31억3천만원/12×39년=101억7천만원)의 6배인 610억원에 이를 수 있다.
코오롱의 배수는 4로 추정된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경우 1985년 이사 승진 때부터 줄곧 임원이던 이 전 회장에게 최근 월평균 1억3천만원을 지급해왔고, 퇴직금으로는 180억9천만원을 지급했다. 역산하면, 회장 직급에 대한 퇴직금 배수는 4다. 이 밖에 ㈜코오롱(2억4천만원) 코오롱글로벌(83억5천만원) 코오롱생명과학(32억2천만원) 코오롱글로텍(89억8천만원)도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보니 지급 배수가 4였다. 이 전 회장은 1년을 일하면 4개월치 보수를 5개 회사에서 퇴직금으로 적립한 셈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최대 배수가 4임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유동성 위기와 외부감사인 ‘한정’ 의견 제출 사태 등에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으로부터 약 24억원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됐다. 엘지(LG)와 케이티(KT)는 취재 결과 지급 배수가 5였다. 이에 맞춰 고 구본무 회장은 ㈜엘지에서 지난해 퇴직금 210억원을 받았다. 2014년 취임한 황창규 케이티 회장의 경우 지난해 연봉 14억5천만원을 받았으므로 퇴직금이 3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최대 배수가 3.5지만 이건희 회장은 보수 없이 일해 퇴직금이 없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훗날 정몽구 회장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가 이웅열 전 회장과 조양호 회장의 최근 퇴직금을 합한 금액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42년 전인 1977년부터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 임원으로 일해온데다, 지난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서 받은 연봉이 95억8천만원이다. 회장 배수는 이전 사례들을 통해 3.5∼4 수준으로 추정된다.
최하얀 기자, 산업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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