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 일부 직원들의 3기 새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지구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토지에 지난 10일 오전 묘목이 심어져 있다. 파노라마 기법으로 사진 7장 합성. 시흥/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 직원들의 새도시 투기 의혹으로 불거진 이른바 ‘엘에이치 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를 잘 아는 관계자들은 엘에이치 사태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10년 넘게 토지 투자와 토지 보상 쪽 일을 해온 ‘업계 전문가’ 두 명에게 공공개발을 둘러싸고 만연해 있는 투기 행태를 들어봤다.
토지보상 전문가의 증언
“용버들이요? 엘에이치 직원이라서 그랬다기보다, 외지인들이 땅 사면 토지 컨설팅 업체들이 붙어서 다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지난 13일 전화로 인터뷰한 ㄴ씨는 엘에이치 직원들이 보인 묘목 심기와 같은 투기적 행태는 ‘땅 투기 공식’에 가까운 것으로 특별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전국 개발현장의 토지 보상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ㄴ씨는 엘에이치 등과 함께 보상 업무에 나선 경험이 많다.
그는 “현금보상만을 노린다면 엘에이치에 수용되면 망한 것”이라며 엘에이치 사업에서는 토지소유주에게 주는 택지 분양권, 이른바 ‘딱지’라는 간접보상의 혜택이 크다고 말했다. “1000㎡ 이상 소유자에게 주는 협택(협의양도인택지)이나 개발지구 내에 실거주한 사람에게 주는 이택(이주자택지), 농사나 축산, 자영업을 한 이들에게 주는 생택(생활대책용지) 분양권이 ‘딱지’로 거래됐어요.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돈도 있고, 땅도 있고, 힘도 있는 사람들이 악용을 많이 하죠.” 개발지구 내에 실제 거주하거나 생업을 영위한 이들의 재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택지 분양권’이 택지 개발 과정에서 ‘딱지’라는 투기 도구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현재 협택과 이택은 1회에 한해 가격 제한 없이 전매가 가능해 막대한 프리미엄이 발생한다. 생택은 계약금 10%를 납입해야 한다는 조건이 생겨 권리를 사고파는 ‘딱지거래’는 금지됐지만, 그 이후 전매가 가능한 것은 똑같다. “협택이 가능한 1000㎡ 규모로 지분쪼개기를 해서 파는 기획부동산이 있기도 하죠.”
그는 일정 면적 이상 토지소유주(주거지역 60㎡, 상업·공업지역 150㎡, 녹지지역 200㎡ 등)들이 현금보상 말고 개발지구의 땅으로 대신 받는 ‘대토보상’에 문제점이 많다고 말했다. “개발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대토 신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동탄, 위례, 마곡을 거치면서 대토가 대박이 났죠. 개발 뒤 땅값이 많이 올랐잖아요. 과천 지식정보타운에 이르러서는 대토보상이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과천은 투기꾼들한테 ‘기회의 땅’이었죠.” 그는 이번에 투기 의혹이 제기된 엘에이치 직원들 상당수가 과천사업본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이 이와 관련 있느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여기서 쌓은 보상 관련 노하우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공개발지구가 정해지면 토지소유주들이 보상 수준을 높이는 과정에서 투기세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보상을 하게 되면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데, 이게 사실 토지주 연합이거든요. 여기 대책위원장 앞으로 투기와 관련된 수많은 제안이 갑니다. 한 지역에서 보상으로 재미를 본 분들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서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토지주들과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하는 토지 컨설팅 업체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지인들이 땅을 사면 컨설팅 업체들이 보상을 많이 받는 방법으로 추천하는 게 있어요. 용버들도 그런 거죠. 보상가가 나오면 더 많이 받아주겠다고 하면서 수수료를 받기도 하고요.”
특히 이런 업체들이 추천하는 건 엘에이치보다는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공사, 민간이 추진하는 개발사업의 땅이라고 했다. “업체들도 엘에이치 편입 토지를 투자 대상으로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엘에이치는 공시지가의 보통 1.5배 내외로 수용을 하는데 지방공사는 후하게 줍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진행했던 은평뉴타운 때는 엘에이치보다 훨씬 많이 준 것으로 알아요. 사실 지방공사가 지분 참여하는 개발사업에 투자하는 게 토지 투자의 정석이에요.”
“분당새도시 인접지 광주 오포 대박…개발지 주변 자경농민 드물어”
지난 10일 오후 세종국가산업단지 예정 부지로 알려진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조립식 주택이 촘촘히 들어서 투기 의혹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토지투자 전문가의 증언
“개발 현장에 다녀보면 자경하는 농민이 거의 없어요. 개발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대리경작 한다고 봐야죠. 일반 투자자들도 무늬만 영농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ㄱ씨는 ‘엘에이치 사태’에 대해 현장에서 투기의 도구로 변질된 농지법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짚었다. ㄱ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토지 투자와 관련한 책을 쓰고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강의해온 ‘업계 전문가’다.
그는 농지법만 제대로 지켜도 이런 투기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번에 논란이 된 엘에이치 직원들이 산 토지의 대다수는 농지였고, 이들은 농업인 자격 취득을 위해 영농계획서까지 제출했다. “농지가 투기장화된 지 오래됐어요. 투자자들은 양도세 감면을 받을 목적으로 농취증(농지취득자격증명)을 취득해요. 다 불법이에요. 옛날에는 이장이나 부녀회장으로 꾸려진 동네 기구에서 농사지을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도록 하는 절차가 있었는데, 여기가 또 비리의 온상이 되다 보니 지자체가 회수해 갔어요. 영농 능력이 되는지 지자체가 필요시 면담까지 하도록 돼 있지만, 다 생략하고 서류만 줍니다.” 조세특례제한법은 8년 동안 재촌자경(실제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한 경우 양도세를 최대 1억원까지 감면해주는데, 투기세력이 이를 노리고 ‘농업인 자격’을 취득한다는 것이다.
그는 새도시 개발 때도 ‘가짜 농부’가 양산된다고 말했다. “새도시를 개발할 때 농지가 수용되면 현금보상을 하잖아요. 그런데 인근 30㎞ 안의 농지를 사면 양도세 감면 혜택을 줍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땅을 삽니다. 그러면 돈을 더 벌 기회가 생기는 거죠. 개발지보다 개발 인접지 땅 값이 더 뛰거든요. 분당신도시도 인근에 광주 오포 땅을 산 사람들이 돈을 엄청 많이 벌었어요. 일반적인 법감정으로는 농사짓던 사람 계속 농사지을 수 있게 해주니 좋은 제도인데, 농사를 계속 안 지어요. 현장에 다녀보면 개발지 주변에 자경하는 농민 거의 없어요.”
그는 엘에이치 직원들이 이용한 내부정보 또는 미공개정보가 광명·시흥 새도시 ‘지정’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 이런 ‘보상’ 관련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새도시가 수용되면 보상가가 형편없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표면적인 이야기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보상과 관련된 엘에이치의 내부정보가 있죠. 구획정리 사업, 용도지역 배분 등 보상과 관련된 사항을 엘에이치가 자체결정 하게 되는데 이런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자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ㄱ씨는 다만 지자체 단위에서 이뤄지는 공공개발의 경우에는 개발지역 ‘지정’ 관련 내부정보를 이용한 선점투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획부동산 같은 투기세력이 결합한다는 것이다. 최근 세종시 스마트국가산업단지 부지에 발표 이전부터 실거주로 위장하기 위한 조립식 주택, 이른바 ‘벌집’이 들어선 사실이 드러나 세종시가 지난 11일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우리는 세종시 벌집 같은 걸 ‘세트장’이라고 하는데, 그런 세트장은 전에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가짜로 ‘미용실’, ‘식당’, ‘부동산’ 같은 간판을 다는 거예요.”
이런 개발계획이 나오면 으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3년간 지정되지만, 이는 착공 이후에는 풀리게 된다. ㄱ씨는 “본격적으로 투기가 판을 치는 것은 이때부터”라며 “경기도에서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 등은 조만간 기획부동산이 집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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