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 출처: ABC 방송 누리집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집중 발사하고 7차 핵실험 가능성이 거론되는 지금이 북-미 대결이 극에 달했던 2017년 말보다 북핵 사용 위험이 더 커진 상황이라고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이 주장했다. 그는 상황 타개를 위해 북·미가 직접 대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멀린 전 의장은 9일(현지시각) <에이비시>(ABC) 방송 ‘디스 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전에 ‘이 지역에서 북한과 핵전쟁이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묻자 “내 생각에 (잦은 미사일) 시험 발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핵전쟁에)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7~2011년에 합참의장을 지낸 그는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미국과의 긴장이 한창 고조됐던 2017년 12월 이 프로그램에 나와 ‘핵전쟁이 가까워졌다’고 말한 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로 책상에 있는 ‘핵 단추’를 언급하며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2017년 말 상황보다 지금이 더 위험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멀린 전 의장은 북한이 최근 들어 더 집중적으로 탄도미사일을 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김 위원장)의 (미사일 능력) 연구와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우리는 5년 전보다 위험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했다. 그는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단순히 (협상의) 지렛대로 쓰는 게 아니라 실제로 쏠 수 있다는 말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 가능성이 실제적이냐는 추가 질문에도 “5년 전보다 더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멀린 전 의장이 말한 ‘5년 전’은 북한이 다양한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을 쏘고 6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북·미가 ‘벼랑 끝’ 충돌을 이어갔던 2017년을 뜻한다. 북한은 그해 7월 미국의 전진기지가 있는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시험 발사하고, 9월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어 11월엔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리며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를 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해 8월 “북한은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를 만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에 대한 선제공격을 뜻하는 ‘예방전쟁’을 언급했었다. 그래도 도발이 이어지자, 미국은 전략폭격기를 북방한계선 북쪽 공해로 띄우고 항공모함 3척을 동해로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2017년 말 북핵·미사일 연쇄 실험과 그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으로 한반도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는 이후 나온 미국 행정부와 미군 고위 관리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빈센트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전쟁에 가까워진” 상태였으며 미국은 “모든 선택지를 검토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인 밥 우드워드는 2020년에 내놓은 책 <격노>에서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2017년 위기 때 워싱턴 국립대성당을 찾아가 수백만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전쟁 위기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전한 바 있다. 멀린 전 의장은 당시 <에이비시> 인터뷰에서 매티스 장관 등이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만류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다고 깊이 우려했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도 9월 유엔 총회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평화를 호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와 달리 북-미 대립을 완화하려 노력하기보다 한-미-일 3각 군사 협력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멀린 전 의장은 북한의 비핵화가 현시점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보냐는 질문엔 “어렵다는 점을 안다”면서도 이를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또 미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해법을 기대해왔지만, 김 위원장이 희망하면 북·미가 직접 협상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과의 전제 조건 없는 대화 의사를 재확인했다. 커비 조정관은 북한이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전제 조건 없이 김정은과 마주앉아 외교적 길을 모색할 수 있다”며 “검증 가능하고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목표라는 점에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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