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6일 서울에서 열린 2022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선수권대회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채 출전한 스포츠클라이밍 이란 대표 선수 엘나즈 레카비의 경기 모습. IFSC 제공 AFP 연합뉴스
한국에서 열린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 히잡을 쓰지 않고 출전했던 이란 여성이 애초 일정보다 빨리 본국으로 불려 들어갔다. 현지 언론은 ‘히잡 의문사’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장기화되고 있어, 이 선수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7일(현지시각) <비비시>(BBC) 페르시아어(이란어)판은 10~16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IFSC) 서울 스포츠클라이밍 아시아선수권대회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출전했던 이란 엘나즈 레카비(33)가 예정보다 이틀 빨리 이란행 비행기에 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란 반체제 매체 <이란와이어>도 레자 자레이 이란클라이밍연맹 회장이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명령을 받은 모하마드 코스라비바파 이란올림픽위원장의 지시로 레카비를 속여 주한 이란대사관으로 데려간 뒤, 조기 귀국 시켰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한 이란대사관은 18일 “이날 아침 레카비가 팀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서울에서 이란으로 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를 위해 이란에선 선수와 코치를 합쳐 11명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엘나즈 레카비(33) 이란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비비시> 페르시안 공식 트위터
레카비는 이번 대회 콤바인 부분에서 4위를 차지했다. 경기 때 이란 당국이 여성들에게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는 히잡을 쓰지 않아 화제가 됐다. 경기 직후인 16일 밤 지인들과 연락이 끊겼고,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 등을 뺏긴 채 이란행 비행기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와이어>는 17일 “레카비가 공항에서 곧바로 에빈 교도소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했다. 테헤란에 있는 에빈 교도소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곳으로 최근 시설에서 불이 나 최소 8명이 숨졌다.
이른 귀국에 따른 논란이 커진 가운데 레카비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가 만든 우려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팀과 함께 이란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레카비가 자유 의사에 따라 이 글을 올린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레카비는 대회 참여 한달 전쯤부터 히잡을 쓰지 않고 출전하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반 경기에선 히잡을 썼지만 16일 열린 결승 경기에선 쓰지 않았다. 다만, <이란와이어>는 레카비에겐 가족이 있어 망명 등을 고려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이란에선 지난달 16일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체포된 뒤 숨진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로 인해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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