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중국 허베이성 줘저우시의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줘저우/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동북 지역이 60여년 만의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가운데, 수도 베이징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주변 지역이 희생해야 한다는 취지의 고위 관료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허베이성의 한 도시가 실제 희생양이 됐다는 주장에 중국 관영언론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지만, 중국 누리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논란은 지난 3일 베이징을 감싸고 있는 허베이성의 최고 관리인 니웨펑 당서기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날 “베이징의 홍수 압박을 줄이기 위해 (허베이성이) 물을 제어하는 조치를 강화하겠다”며 “이는 수도를 위한 ‘해자’ 역할을 결연히 잘 수행해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해자’는 성을 지키기 위해 둘레에 땅을 파고 물을 채워놓은 것을 뜻한다. 그는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이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허베이성의 슝안 신도시에 대해 “우리 (허베이)성에서 홍수 통제의 최우선 순위 지역”이라고도 말했다.
베이징과 슝안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허베이성이 최대한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최근 폭우로 200만 명 가량의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나온 허베이성의 최고 관리의 이런 발언은 곧 누리꾼의 큰 불만을 샀다. 누리꾼들은 특히 베이징에서 채 100㎞도 떨어지지 않은 허베이성 줘저우시를 지목해 ‘줘저우가 베이징의 홍수 피해를 막는 해자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쏟아냈다. 인구 70만명의 줘저우시는 지난 1~2일 집중 폭우로 도시 대부분의 지역이 물에 잠겼고, 전체 인구의 20%에 가까운 13만여 명이 이재민이 되는 등 피해를 봤다.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의 관련 글에는 “베이징을 지킨 결과 그들은 1년 치의 양식과 수입을 잃었다”, “허베이성이 불쌍하다”, “허베이성 주민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시진핑 주석에 대한 충성만 신경 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미국, 영국 언론 등을 중심으로 베이징의 피해를 막기 위해 물길을 틀었다는 식으로 논란이 번지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6일 ‘서구 언론이 과장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반박에 나섰다. 이 매체는 중국 수자원 전문가를 인용해, 베이징이 허베이성에서 상류 지역에 있기 때문에 베이징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물길을 틀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매체는 “줘저우는 홍수 방지 구역으로 이용된 적이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며 “비상 상황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심각한 홍수 피해를 본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논란은 베이징과 베이징을 둘러싼 허베이성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더욱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허베이성에 속했던 베이징은 중국 수도로서 집값이 서울과 비슷하고 월 평균 임금이 1만 위안(180만원) 이상으로 중국 최고 수준이다. 물가 또한 웬만한 선진국을 뛰어넘었다.
반면 허베이성은 월 평균 임금이 베이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집값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허베이성의 평균 임금은 중국 31개 성 가운데서도 하위 30%에 속한다. 한 누리꾼은 웨이보에 “허베이성에 태어난 것이 이번 생 최대의 한”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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