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92년 역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리면서 다양한 논란이 일고 있다. 카타르가 2010년 개최권을 따낸 직후 뇌물 제공 의혹에 이어 지난해에는 경기장 건설에 동원된 이주노동자들의 과로사, 최근엔 성 소수자 차별 문제 등이 제기됐다. 그래서인지 인권 침해에 대한 각국 선수들의 항의 표시도 다양한 방식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는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최대 7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7개국 대표팀 주장들은 지난 9월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이번 대회에서 주장들이 무지개색으로 채워진 하트에 숫자 ‘1’이 적힌 ‘원 러브’(One Love) 완장을 팔뚝에 차고 경기를 하기로 했다. ‘원 러브’는 흔히 인종, 신조, 사회적 지위 등과 상관없는 보편적 사랑과 존중을 뜻한다(urbandictionary.com).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해리 케인은 “우리는 경기장에서 서로 경쟁하겠지만 모든 유형의 차별에는 함께 대항할 것이다. 이는 분열이 일상화된 시대에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프랑스 대표팀 주장인 위고 요리스는 “카타르 문화를 존중하겠다”며 이런 행동에 반대했다.
이 캠페인은 네덜란드 축구협회가 202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에서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을 촉진하려는 뜻에서 시작했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주장 버질 판데이크는 “축구 경기장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사회 모든 곳에서도 그래야 한다. ‘원 러브’ 완장으로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유럽 선수들이 적극적인 건 다양성을 추구하는 유럽사회 문화에다 팀 자체도 다양한 인종·종교·문화적 배경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은 이 완장을 찬 선수에게 옐로카드 벌칙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신에 두 손을 맞잡는 모양이 그려진 노란색 하트에 ‘차별 반대’라는 문구가 적힌 완장을 차도록 했다. 끝까지 강행 의사를 밝혔던 케인도 옐로카드 위협에는 어쩌지 못했다.
이란 선수들의 퍼포먼스도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자국의 히잡 반대 시위대에 대한 연대 표시로 국가 제창을 거부했다. 수억명의 세계 시민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각국 선수들이 인권 침해 반대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화려한 발재간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남은 경기에서 또 다른 퍼포먼스를 볼 수 있을까.
박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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