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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청조·남현희 사건을 쓰지 않은 이유 [슬기로운 기자생활]

등록 2023-11-10 07:00수정 2023-11-13 13:47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의혹이 확산한 전청조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의혹이 확산한 전청조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지현|정책금융팀 기자(오픈데스크팀 파견)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광고 기사인가 싶었다. 이제는 사기극으로 판명 난 자칭 재벌 3세 전청조와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의 결혼 발표를 전한 여성조선의 ‘단독’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재벌가 3세로 태어나 ‘유명’ 글로벌 아이티(IT)기업 ‘임원 활동’을 하며 ‘경영을 도왔다’든가, ‘뉴욕에서 승마를 전공’하고 ‘다수 대회에서 우승’했다든가 하는 기사 내용은 앞뒤가 맞질 않았다. 지금까지 기사 한줄 나온 적 없는 재벌 3세 글로벌 아이티기업 임원이라니…. 냄새가 났다.

게다가 팩트 확인에 필요한 디테일은 교묘하게 빼놓고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한 수식어만 잔뜩 동원한 게 기자가 쓸 법한 문장 같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인터뷰이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쓴 모양이구나’ 하고 넘겼다. 돈을 받고 광고성 기사를 실어주는 매체도 있으니 그런 기사인가 싶었다. 돈 받고 쓴 기사라면 인터뷰이 얘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따로 취재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여성조선의 이 기사를 중앙일보, 서울신문 등 주요 매체들이 보도 당일(10월23일) 온라인기사로 받아썼다. 별도 사실 검증 없이 여성조선 기사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식이었다. 대부분 온라인기사를 생산하는 디지털뉴스팀 소속 기자들이 쓴 기사였다.

종합지·경제지·스포츠지 등은 지면에 싣는 기사와 별개로 온라인뉴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 팀을 꾸려 운영한다. 한겨레에도 ‘오픈데스크’라는 이름의 디지털뉴스팀이 있다. 오픈데스크팀으로 파견 와 일한 지 2주쯤 지났을 때 전청조·남현희 사건이 터졌다.

전청조·남현희 기사는 쓰기만 하면 조회수가 보장되는 기사였다. 유명인이 주인공인데다 돈과 성이라는 관심도 높고 자극적인 키워드가 위험하게 얽혀 있었다. 온라인뉴스 생태계에는 올라타기만 하면 높은 조회수가 보장되는 굵직한 조류가 흐른다. 그 조류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국뽕’이라 불리는 애국심이라든가, 반일·반중 정서, 잘나가는 연예인, 돈, 성 등이 ‘스테디셀러’고, 그때그때 반짝 뜨고 지는 ‘따뜻한 가을’ ‘공매도’ ‘마약’ 같은 단발성 용오름도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이런 흐름에 올라타는 기사는 우리 사회 각종 혐오를 확대·재생산하거나, 확증편향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

온라인뉴스 생산자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조회수와 함께 저울에 올려지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다. 다행히 ‘한겨레’ 구성원들 사이에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사실보도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재벌 3세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된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받아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청조씨 판결문이 공개됐을 때는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퀴어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얘기에 ‘아차’ 싶었다. 전청조가 성소수자이건 아니건, 그가 ‘여자냐 남자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나오는 혐오 표현들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온라인 기사를 써야 할까. 혐오를 재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가급적이면 공익적이기까지 한 기사를 쓰는 일. 오늘도 온라인뉴스 생산자의 고민은 깊어간다.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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