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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판타지 없는 결혼, 반전 있으려나

등록 2013-10-25 19:19수정 2013-10-27 10:58

<결혼의 여신>(SBS)
<결혼의 여신>(SBS)
[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단 한번도 한 회를 끝까지 보지 못한 드라마가 있다. 채널을 돌리다 얻어걸려 본 몇 장면으로 이야기를 엮긴 할 터이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드라마를 매회 시작부터 끝까지 보지를 못했다. 오늘 하루도 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넘어가질 못하는, 결혼 생활을 그린 드라마이기 때문인지 <결혼의 여신>(SBS)에서는 매회 누군가 울거나 짜증을 내거나 악다구니를 하지 않고서는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 절망의 구렁텅이를 보고 있자면 속이 답답해 끝까지 채널을 붙들고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결혼의 여신>은 제목으로 내심 기대하게 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으로 인해 인생이 꼬인 네 여성의 갑갑하거나 잔혹하거나 평범하거나 구질구질한 이야기다.

네 명의 여자가 있다. 말단 공무원의 장녀로 태어나 더 이상 꼬질꼬질하게 살기는 싫다고 다짐하며 아나운서가 된 혜정(이태란)은 병석에 오래 누워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결국 자신의 성공도 보잘것없다고 여기며 회의에 빠진다. 3년간 사귄 선배 아나운서를 버리고 신영그룹의 둘째 아들 강태진(김정태)과 결혼한다. ‘재벌가의 아들과 결혼한 혜정은 자신이 욕망하던 다른 삶을 이루어 유리구두를 신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한다면 혜정은 막 뒤로 사라졌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불행하므로 계속된다.

막상 결혼 생활에 돌입하니 남편은 사사건건 그를 멸시하고, 바람까지 피운다. 혜정은 정떨어진 남편은 접어두고 성실하게 그룹 일에 관여하며 야망을 키워나간다. <청담동 앨리스>에서 서윤주(소이현)가 말했듯 그에게도 결혼은 비즈니스다. 하지만 누군가의 책략에 의해 과거 연인과 스캔들에 휘말리고 결국 남편과 이혼 소송을 벌이며 예상치 못했던 결혼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혜정의 손아래 동서로 신영그룹의 셋째 아들 태욱(김지훈)과 결혼한 지혜(남상미)가 있다. 충북 괴산 사과농장의 딸이자 10년차 라디오 작가인 지혜는 소박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재벌가의 아들인 줄 몰랐던 남자친구 태욱이 결혼 준비 자금으로 10억을 내놓으면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결혼을 두 달 앞두고 혼자 떠난 제주 여행에서 난생처음 마음이 잘 통하는 남자를 만나 갈등에 휩싸인다. 갈등은 대충 덮어둔 채 결국 태욱과 결혼한 지혜는 검박하고 허물없던 친정과 달리 보수적이고 위압적인 시집에서 목이 조여옴을 느낀다.

지혜의 언니 지선(조민수)은 워킹맘 26년차다. 잘나가는 광고회사 부장이다. 남편 장수(권해효)는 전문대를 졸업한 자동차 수리공이다. 대학 산악부 캠핑에서 잘못 들어간 텐트에서 엮인 인연인 둘 사이에 결혼의 조건이나 자격 같은 건 없다. 부부는 사이좋게 지내지만 오지랖 넓고 함부로 말하기 좋아하는 시어머니는 때때로 그를 폭발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지만 가족들과 아웅다웅하며 26년째 직장 생활을 이어나가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지선의 동서 은희(장영남)는 영어방송 아나운서인 남편 얼굴 하나 보고 결혼했다. 하지만 함께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와 외도한 남편은 은희를 “밥풀때기에 불과한 인간”으로 여길 뿐이다. 남편과 별거하며 자신을 조금씩 찾아나가지만 외도로 가정도 직업도 모두 잃은 남편 승수(장현성)의 치졸하고 집요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해피엔딩의 은유 혹은 현실과 거리가 먼 환상으로 부풀어오른 결혼은 숱한 드라마에서 보아왔다. 하지만 <결혼의 여신>에서의 결혼 생활은 다른 방식으로 부풀려져 있다. 고단한 결혼 생활의 네 사례는 때로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보다 혹독하다. 하지만 그런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드문드문 방송을 보며 조각난 이야기를 이어 맞추는 이유는 이 여성들의 처지가 어느 한 부분씩은 나와 혹은 우리와 조금씩 닮은 듯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과 관습에 얽혀 여성은 여전히 결혼에 있어 약자의 처지다. 낡고 오래된 결혼제도의 모순 속에서 이 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똑바로 바라보고, 숨 쉴 틈을 찾게 될까. 앞으로 두 회 분량 남은 드라마에서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판타지 없는 그렇고 그런 결혼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궁금하다.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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