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기자
박창신 신부가 미사에서 한 강론을 두고 난리다. 박근혜 대통령은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이라고 했으며, 정홍원 국무총리는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적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북의 대남투쟁 지령이 하달된 이후 대선 불복이 활성화되고 있다”며 북한 연계설을 제기했다. 당정청 최고 수뇌들의 합창 뒤에 하부 단위는 거의 총궐기 분위기다.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으며, 여당은 연일 ‘종북 척결’ 타령이다.
물론 박 신부의 발언 중 일부는 잘못이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독도 방어와 비교해서 “엔엘엘(NLL·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에서 어떻게 해야겠어요? 쏴야지”라고 한 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우리 영토에 대포를 쏴 민간인에게까지 피해를 입힌 북한의 군사도발을 두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나서 “용납하지 않겠다”거나 “당신의 조국은 어디냐”(이정현 홍보수석)고 묻는 등 정권 전체가 발끈해야 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박 신부의 문제되는 발언은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남한에서 정치적 반대자를 종북으로 몰아선 안 된다, 남북이 대화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왔다. 더구나 강론의 전체 내용은 대선 불공정과 정권의 잘못된 처리를 성토하는 것이었다.
정권 담당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박 신부가 속한 정의구현사제단까지 종북이라고 공격하는 등 과잉대응하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 여권 용어로 하면 ‘대선 불복’을 잠재우려는 의도다.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 같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힘을 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전주교구 사제단에서 처음 내건 박 대통령 퇴진 요구가 전주를 넘어 전국으로, 또 천주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계 전체로 번지는 것을 미리 막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이런 대응이야말로 헛발질이다. 공산주의와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성직자들을 종북주의자로 모는 일에 누가 공감하겠는가. 정부가 공안정국을 조성한다고 시민들이 할 말을 삼키고 숨죽이는 시대도 지났다.
즉자적인 반발보다는 우리 사회 일각에서나마 정권 퇴진 요구가 나온 까닭을 잘 봐야 한다. 전주교구 사제단이 내놓은 시국선언문에서 보듯 이들은 이 정권이 대선개입 사건 등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서 정부에 대한 기본적 믿음마저 내려놓았다. “이 사태의 직접적이고 총체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청와대 뒤에 앉아” 있고, “경찰과 검찰은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불법적 대선개입을 소신있게 수사하던 담당자들을 직무에서 배제시키고,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하려는 시도를 했”던 데 대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짓밟는 정부에 대한 주권자로서의 저항이다. 굳이 따진다면 대선불복이 아니라 ‘정권 불복’ 선언이다.
대선 불복이라는 말만 나오면 움츠러드는 야당 분위기나 헌정 혼란을 우려하는 국민 정서로 볼 때 종교계 일각의 대통령 사퇴 요구가 당장 파장을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크기가 문제가 아니다. 출범한 지 1년도 안 된 정권이 순전히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사회의 빛과 소금인 성직자들로부터 전면적인 외면을 받게 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신뢰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지지율 하락 등 급격한 추락은 시간문제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등에 대해 박 대통령이 한번이라도 “용납할 수 없다”고 격노하고 진상 규명을 진두지휘했더라면 어땠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박 정권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해법은 여전히 박 대통령이 쥐고 있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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