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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알파고가 칼럼을 쓸 때, ‘무엇을 할 것인가?’ / 권태호

등록 2016-03-13 21:33수정 2016-03-13 21:40

‘인간 이세돌의 투혼…인공지능 알파고를 꺾다’. 역사적인 이세돌의 1승이 이뤄진 13일 저녁, <인터넷한겨레>(www.hani.co.kr)의 톱기사 제목이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긴 것은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사자와의 맨몸 대결에서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이세돌이 이겼지만, 어쩌면 이는 인간이 알파고를 이긴 처음이자 마지막 대국이 될는지 모른다. 알파고는 성경 구절처럼 ‘하루가 36년 같고, 36년이 하루 같은’ 존재다. 무서운 속도로 자기를 계발하며, 인간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학습’과 이를 통한 ‘직관’을 감히 건드리고 있다. 지금까진 ‘바둑 외에 다른 능력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 먼 시간이 지나지 않아 ‘종합학습과 사고할 줄 아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한 자기학습을 통해 인공지능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를 갖게 되는 날이 올까? 산업혁명 이후 기계의 발명은 인간의 근육과 단순작업을 대체했다. 이젠 인간의 영역이었던 ‘결정’(decision)을 대체하는 수준의 문턱에 다다랐음을 알파고가 일깨워줬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인공지능이 읊게 될 때, ‘생명’과 ‘삶’의 개념은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런 철학적 사고에 앞서 우리의 관심은 먼저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 생존의 문제에 닿았다. 감정노동으로 고통을 겪는 콜센터 직원들은 어떤 욕설을 들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로봇들로 대체될 것이다. 펀드매니저, 판사, 교사, 기자도 그럴 수 있다. 이미 외국 일각에선 날씨, 주식시황, 스포츠 경기 결과 등 단순기사는 컴퓨터가 대신한다. 칼럼도 알파고의 경우처럼 이전의 수많은 신문 칼럼을 입력해 유형을 분석하고, 뉴스를 매일 새로 입력한 뒤, 논조와 난이도를 단계별로 나눠 놓으면 인공지능이 칼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쓸모’가 사라진 인간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산업혁명 초기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처럼 알파고를 때려부숴야 하는 건가?

금세기 인간들은 과학이 발달하면 하루 2시간만 일해도 잘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예측은 빗나갔다. 사람은 이전보다 점점 더 많은 시간 일하게 됐고, 삶은 점점 팍팍하고 피폐해졌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처럼 ‘더 많이, 더 빨리’를 요구하는 효율성의 시대 앞에 인간은 점점 기계가 되어 갔다. 그 눈부신 효율성을 통해 얻은 수익은 ‘기계(생산도구)를 소유한 소수’에게 집중됐다.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 앞에 우린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를 두려워한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경험을 돌아보면,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의 시대 앞에 인공지능을 소유한 인간에게 모든 기회와 부가 집중될 초불평등의 시대를 먼저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점점 기계처럼 되어 가고, 기계는 점점 인간처럼 되는 시대 앞에 서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것은 자동차와 100m 달리기를 겨루는 것과 똑같다. 대국을 치르면서 중간중간 화장실도 가야 하고, 잠도 자고, 먹기도 하고, 가족들과 껴안기도 해야 하는 이세돌과 달리 알파고는 ‘바둑’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둑(생산)을 하지 않을 때의 이세돌이 인간다움의 조건이다. 자본주의는 인간다움을 비효율로, 그리고 기계다움을 능력으로 포장해왔다. 이를 ‘발달’이라 했다.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알파고’가 아닌 ‘이세돌’로 돌아가야 한다. 첫걸음은 스스로, 그리고 집단이 ‘탐욕’을 제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권태호 디지털 에디터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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