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디터 이번 추석 연휴의 어느 날, 손녀딸 먹일 엘에이(LA) 갈비를 정성스레 구우시던 시어머니께서 지나가듯 물으셨다. “우리나라가 인제 공산화되는 기가?” 옆에서 고기 한점씩 주워 먹다 허를 찔린 나는 “아유~ 아니에요”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당연히’ 믿지 않으시는 표정이었다. 하긴 ‘똘이장군’으로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 역시 요즘 모든 것이 낯설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서 손가락 하트를 날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동포 여러분”과 “핵 없는 한반도”를 외치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상시적인 미사일 발사로 ‘위기가 일상’이던 우리가 불과 1년도 안 돼 돌이킬 수 없는 평화를 얘기하고 있다. 다만 남북 관계가 안정적일 때 남-북-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할 수 있다. 남북의 불가침과 전쟁 종료, 영속적인 평화체제 구축 등 실질적 평화를 ‘제도화’하는 것은 국내 정치의 몫이다. 첫걸음은 4·27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로 시작된다. 정치권은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보고 재논의하는 걸로 잠시 ‘휴전’에 돌입했지만, 보수야당의 박한 평가를 볼 때 전망은 밝지 않다. 자유한국당이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를 반대하는 이유는 여럿이다. 일단 비용의 문제다. 통일부가 지난 11일 제출한 내년치 판문점선언 이행비용 4712억원은 장기 추계를 위한 공동조사, 시범사업의 비용이다. 야당은 실제론 수십조원이 들 텐데 내년치 예산만 계산한 것은 꼼수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시범사업을 해야 실제 사업비용의 견적을 낼 수 있다. 북의 도로와 철도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당장 계산서 내놓으라’는 것은 억지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걱정하기도 한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국회가 비준을 하게 되고 이는 한-미 동맹의 균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주요 당사자가 미국인데, 느닷없이 한-미 동맹을 걱정하고 있다. 보수야당은 청와대의 방북 동행 요청을 거절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면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걷어찼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 “북한은 핵을 꼭꼭 숨겨두고 있는데, 우리는 모든 전력을 무장해제를 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비핵화 문제는 거의 진전이 없고, 정찰 부분에서는 우리 국방의 눈을 빼버리는 합의”라고 혹평했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불과 다섯달,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석달이 조금 지났다. 북의 ‘항복문서’를 받지 못했으니 실패했다는 평가인데, 자신들은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북한붕괴론과 흡수통일에 기반해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이명박 전 대통령) “통일은 대박”(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던 지난 두 정부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됐고, 한반도는 더욱 위험해졌다. 무엇보다 현재 통일 비용을 걱정하는 보수야당이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흡수통일’을 주장했던 것은 모순이다.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보수야당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를 ‘위기 탈출구’로 활용한다고 비판하지만, 막상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경제파탄 덮기 위한 비준동의 규탄한다”는 손팻말을 든 자유한국당이다. 판문점선언이 국회에서 비준동의 되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대북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해, 안정적으로 남북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도 ‘공산화’와 ‘전쟁의 공포’에서 이젠 벗어날 때가 됐다. idun@hani.co.kr
이슈한반도 평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