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국제 에디터 2017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첫 정상회담을 할 때만 해도 전면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회담은 그 나름 화기애애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으로 냉랭해진 양국 관계가 밀월로 접어드는 듯했다. 특히, 중국 쪽에서 기대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양국 정상회담 뒤 3개월여 만인 같은 해 7월19일 장관급 ‘포괄적 경제대화’가 열렸지만 예정됐던 기자회견은 갑자기 취소됐고, 공동성명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는 회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이전보다 강하게 접근했으며, 이에 따라 양쪽이 “상당히 거칠었다”고 전했다. 우리는 북핵 문제 논의에만 주목했지만, 이미 당시에 미-중 무역전쟁의 서막이 올랐던 셈이다. 그 뒤 1년8개월 동안 샅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을 보면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버랩된다. 앞으로 북-미 협상이 미-중 무역전쟁처럼 길고 긴 롤러코스터를 탈지, 아니면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레이캬비크 회담’처럼 실패를 딛고 달콤한 결실을 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렬의 예술’을 끌어내기 위해선 낙관론에만 기대기보다는 점검 목록과 ‘플랜 비(B)’를 만드는 작업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협상에서 모든 옵션(선택지)을 총동원하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 폭탄을 부과하는 것은 기본이고,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대만 문제를 거론하거나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군사작전을 수시로 실시하며 압박한다. 그러면서 중국과의 협상이 제대로 안 되면 “언제든 협상장에서 걸어나갈 수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햄버거 회담’이나 국소적인 대북 군사타격 전략인 ‘코피 전략’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양상과 비슷하다. 그의 이런 아웃복서 기질에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방 지도자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과시한다고 해서 협상에서의 타협이나 양보를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되레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옥죄어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술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무역전쟁 와중에도 시진핑 주석에게 “친구” “존중한다” 등의 말치레를 수없이 했다. 따라서 그가 김정은 위원장을 “친구”라고 부른 것이나 “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는 등의 얘기를 한들, 낙관론적 전망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먼저 양보를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미국 내에선 미-중 무역전쟁의 조기 종식을 원하는 이익단체가 적지 않았다. 월가의 금융인들은 물론이고, 자동차 부품 업체, 심지어 소비재 업체들도 관세 인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그가 중국과의 협상을 조기에 끝낼 것이라는 견해가 대다수였지만, 그러지 않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재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가 끝까지 막으려 했던 미국산 낙농제품 수입을 얻어낸 뒤에야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북-미 협상은 미-중 무역전쟁보다 미국 내 환경이 더 나쁘다. 대다수 미국인은 북핵 문제에 관심이 없다. 어떤 기업이나 정치권도 속도감 있는 협상을 지지하지 않는다. ‘배드딜’(나쁜 협상)보다는 ‘노딜’이 낫다는 광범위한 동의가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관심이 멀어진다면 추동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가 북한의 약점’이라는 인식이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에 자리 잡았다면 미국이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우리 정부도 호흡을 가다듬고 내부 정비를 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진부하거나 숙성되지 않은 메시지들이 나온다. 냉정한 평가를 바탕으로, 필요하면 외교안보 고위층에 대한 인적 교체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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