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ㅣ 전국부장
올해 초 언론중재위로부터 언론조정신청서가 날아왔다. 기사와 관련해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청구가 접수됐으니 조정기일에 출석하라는 통지였다.
‘요새 어떤 잘못 쓴 기사가 있었나…’ 뜨끔하는 마음으로 신청인을 살폈다. 용산구청장 성장현. ‘이제야 이런 대응을…’ 탄식이 흘러나왔다.
경위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두어달 전 <한겨레>는 이런 보도를 내보냈다.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더불어민주당·3연임)이 구청장으로 재직하던 5년 전 30대 두 아들과 함께 용산구 관내 재개발 지역 다가구주택을 매입했는데, 이후 이 주택 시세가 10억원 이상 뛴 것으로 나타났다. 성 구청장은 이 주택을 제외하고도 관내에 아파트 2채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아들과 처제도 최근 관내에서 주택을 사 투기 의혹이 일고 있다.”(2020년 11월12일)
기사에는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감정평가 업체 선정과 관리처분 인가권을 구청장이 행사하게 돼 이해충돌 논란이 일 수 있으며, 대출금 5억8천만원을 제외한 매입자금 14억여원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지만, 성 구청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 또다른 제보가 들어와 추가 취재가 시작됐고, 한달여 뒤 이런 보도가 이어졌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산하 공공기관에 자신의 측근과 과거 선거캠프 출신 인사들을 부정 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채용 과정을 잘 아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향우회나 노인회, 장학회 등 관내 각종 단체장들과 연이 닿는 입사자까지 합하면 전체 부정 채용 규모가 100명대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2020년 12월30일)
요즘 가뜩이나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부정 채용’ 관련이었건만, 성 구청장은 이번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이튿날엔 부정 채용 의혹 건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의문을 불러일으켰던 ‘용산구청 성아무개 주무관’ 건 보도가 이어졌다.
2010년 6월 용산구청이 ‘기능 10급’ 운전직 1명을 선발했는데, 100명 가까운 지원자 가운데 성 구청장 캠프에서 자금을 담당하고 친인척으로 알려진 성아무개씨가 선발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엔 성 구청장이 나섰다. 중재위를 통해.
기사에서 성 구청장 지인은 “구청장이 성 주무관의 아버지를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여러번 봤”고, “○○(성 주무관)이가 사촌 형(성 구청장) 덕에 공무원이 됐다고들 했다”고 말했지만, 성 구청장은 ‘같은 성씨를 가진 직원일 뿐’ 사촌 관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제적등본 등 증빙자료도 첨부됐다.
하지만 지난달 열린 중재위는 싱겁게(?) 끝났다. 애초 기사는 성 주무관이 성 구청장의 사촌 동생이라고 단정하지 않았고 사촌 관계임을 부인하는 성 구청장 쪽 반박도 담겼기 때문이다. 성 구청장이 요구한 정정보도는 반론보도로 낮아졌고, 1천만원 손해배상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중재위는 반론보도를 인터넷에만 싣는 것으로 조정했으나 <한겨레>는 자체 판단에 따라 지면에도 실었다.)
‘성장현 중재위’ 건은 이렇게 정리됐지만, 지금도 마음 한편엔 묘한 여운이 남아 있다. 기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사실과 진실, 그 사이 거짓말’이라는 방정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 구청장이 낸 자료를 보면 두 사람은 사촌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본적(등록기준지)은 ‘전남 순천시 황전면’의 한 마을로 같다. 심지어 번지수 끝자리만 다른 옆집이다. 정말 ‘성만 같은 직원’이 우연히 옆집 출신이고, 선거캠프에서 일했고, 또 공무원이 됐을까?
더욱이나 더 민감할 수 있는 성 주무관이 선거캠프 자금 담당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해 성 구청장은 별다른 답변이나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별다른 운전경력도 없다는데 어떻게 100 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채용됐는지, 채용 뒤엔 왜 운전과 별 관련 없는 구청 재무팀에 근무하는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사촌은 아니다’라는 사실 너머에는 도대체 어떤 진실이 있는 걸까.
고발이 이뤄진 만큼 수사기관이 나서겠지만, 선출직 공직자라면 의혹의 핵심을 직접 해명하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구청장이 되기 전 웅변학원을 경영하기도 했다는 성 구청장의 좀더 떳떳한 항변이나 반박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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