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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대일 역사대응, 이대로 좋은가 / 김현정

등록 2021-04-01 14:38수정 2021-04-02 02:04

김현정ㅣ배상과 교육을 위한 위안부행동 대표·샌프란시스코 CWJC 총무이사·ICJ 추진위 대변인

왼뺨을 때리길래 오른뺨을 내밀었더니 뒤통수까지 맞았다.

애초에 2015년 합의는 ‘고쳐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는, 온 인류가 두고두고 기억하여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반인륜 범죄이자 중대한 세계인권·여성문제이기 때문이다. 독일과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했으니, 다시는 “국제사회에서 거론하지 말”자 하거나, “피해자 추모비 철거”를 거론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합의 직후, 독일 총리가 직접 사과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여러 차례 “피해자 중심 해결”과 “할머니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올해 초에는 한일관계 개선을 이유로 2015년 합의를 인정한다는 충격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1월8일 서울중앙지법 위안부 배상 승소판결에 대해서는 “곤혹스럽다”고 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오라”며 고자세로 버티면서, ‘위안부’ 피해자 개인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역사적 판결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재판에서 이겼으나 강제집행은 요원한 현실이며, 결국 할머니들 입장에서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번엔 교과서가 더해졌다. 3월30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될 모든 ‘역사총합’ 교과서에서 “위안부” 등 일본의 전범 책임은 축소 또는 삭제됐으며, 독도는 일본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쓰는가 하면, “대동아공영설”을 내세워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다.

양쪽 뺨을 다 맞고 뒤통수까지 맞은 격이다. 그러는 동안 일본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며, 미국과 서구 사회를 무대로 연간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는 역사수정주의를 ‘착실히’ 펼쳐 나가고 있다. 하버드대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은 일본 정부의 용의주도한 “역사전”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진정 우려되는 지점은, 지금 2015년 졸속합의의 패착을 확대,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합의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커다란 포트홀(지반에 생긴 구멍)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다. 그 이유는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범죄사실 인정에 기반한 진정하고 명백한 사죄, 즉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끝없는 역사 부정과 왜곡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은 수없는 2차, 3차, n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자. “지난 30년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일본의 범죄를 밝히는 방법만 남았습니다. 우리 한을 풀어주세요.” 고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전체를 줘도 해결이 안 되겠지만, 진정한 사죄를 한다면 용서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어제’는 제 나라(외무성) 홈페이지에서의 고노담화 삭제와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주장이었고, ‘오늘’은 역사 왜곡 교과서의 개악이지만, ‘내일’은 베를린과 글렌데일에서의 소녀상 철거가 현실이 될 수 있다.

2015년 합의는 이미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국가 주도의 대규모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나쁜 선례”로 판정이 난 지 오래다. 선택은 정부에 달려 있다.

지금이라도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일본에 제안하라. 일본이 받든 거부하든, 일본의 입장을 왜 미리 걱정해주는가. 시간이 없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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