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모처럼 새 신 신고 나왔는데, 얕지만 흙탕물투성이인 웅덩이에 발 헛디딘 날이. 그런 날 있다. ‘이제 추위는 다 지났네!’ 한 치 의심도 없이 가볍게 차려입었더니, 바로 그 저녁 찬바람 오지게 불었던 날. 있었다, 그런 날. 회의시간에 맞추려고 아침도 건너뛰고 헐레벌떡 지옥철 타고 갔더니, “어, 오늘 회의 연기됐는데 몰랐어요?” … 이런 수많은 날들을 한 소설가는 <운수 좋은 날>이라고 이름 붙였다, 역설적이게. 산에 핀 야생화를 보러 간 날이 딱 그랬다. 긴소매 윗도리에 땀이 맺히는 걸 느끼면서 산을 탔는데 중턱에 오르자마자, 눈앞이 새하얘지면서 한겨울보다 더한, 눈발이 세차고도 분분하게 흩뿌렸던 날. 봄볕 타고 피어난 진달래 송이들에게 그날은 어떤 날로 남을까 궁금했다. 그이들에겐 ‘재수 없는 날’이겠지만, 내게는 평생 한번 보기 힘든 운수 좋은 날이구나… 싶었다. 운수 없었던 어느 한 날이 다시 내게로 돌아와 ‘재수 좋은 날’로 기억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4월 어느 하루,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