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일 자신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수사와 관련해 시민들의 판단을 구하겠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자, 검찰도 4일 전격적인 구속영장 청구로 맞대응했다. 사진은 지난 5월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는 이 부회장. 연합뉴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일 수사·기소의 타당성에 대해 검찰 외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검찰은 4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삼성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 이전에 영장 청구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입장문을 내어 “분식회계 규모, 죄질,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 등을 감안해 이미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고 검찰총장에게 승인을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불순한 의도로만 볼 수는 없다. 형사사건 피의자로서 제도가 보장하는 심리 절차를 모두 거치겠다는 건 당연한 권리 행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수사심의위가 검찰 수사의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한 제도라는 점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불법승계 의혹 수사가 수사심의위에 올릴 만큼 국민들로부터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삼성의 사회·경제적 영향력과 상징적 지위에 기대어 수사심의위에서 유리한 판단을 끌어내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와 별개로 검찰의 대응은 정도를 벗어났다. 수사심의위는 검찰개혁 여론에 발맞춰 2018년 검찰 스스로 도입했다. 우리나라 형사사법 체제에서 기소 여부 등 검찰권 행사에 시민이 직접 관여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다. 이 부회장 쪽의 의도야 어떻든 수사심의위 소집 절차가 시작된 마당에 영장 청구를 밀어붙인 것은 제도의 취지에 반할뿐더러 아예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검찰이 역량을 집중한 사건에서 시민의 참여를 통해 검찰권 행사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 게 안타깝다.
삼성의 불법승계 의혹은 우리 사회와 경제의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중요한 가늠자가 될 사건이다. 실체적 정의의 실현은 물론 처리 절차 또한 공명정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부회장과 검찰이 보인 태도는 ‘수 싸움’ 이상으로 비치지 않는다.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수사심의위나 법원이나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것으로 본다. 당장 8일 이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다. 양쪽 모두 ‘법률 기술’을 발휘해 승부를 가리려 하지 말고 진실 앞에 정정당당하고 겸허한 자세로 법적 판단을 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