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 된 뒤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경선 과정은 꽃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오로지 가시밭길이다.”
28일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에서 압승을 거두며 당권을 거머쥔 ‘이재명호’의 출항을 지켜보며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이런 전망을 내놨다. 대선 패배 직후 곧장 당대표에 도전해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머쥔 이 신임 대표가 ‘여의도 정치’ 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169석 거야를 잘 이끌 수 있을지 비로소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신임 대표는 합산 득표율 77.77%를 기록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특히 투표에 참여한 권리당원 가운데 78.22%(33만5917명), 일반국민(여론조사) 82.26%가 이 대표에게 표를 몰아주며 기대를 나타냈다. 민주당의 전통적인 기반을 대표하는 대의원 역시 이날 투표에서 1만6282명 중 1만4011명이 참여해 86.05%의 투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72.03%가 이 대표에게 지지를 몰아줬다. 권리당원과 달리 대의원은 국회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의 ‘줄 세우기’가 가능한 ‘조직표’로 평가되나, 대의원 표심에서도 ‘대세론’이 확인된 셈이다. 결과 발표 뒤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하나 된 마음에서 간절함을 넘어 비장함마저 느낀다”고 밝혔다.
이 신임 대표 눈앞에 놓인 첫 과제는 ‘당내 통합’이다. 지난해 치열했던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시작으로 6·1 지방선거와 8·28 전당대회를 거치는 동안 민주당 안에선 ‘분당설’이 나올 정도로 계파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무엇보다 비명계(비이재명계) 쪽에선 2024년 총선의 공천권을 갖게 된 이 대표가 ‘공천 학살’에 나설 수 있다고 긴장하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작은 차이 때문에 갈등하고 분열하는 데 쓸 시간이 없다. 혁신하기에도, 국민의 삶을 보듬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이제 모래 더미, 자갈 더미가 아닌 콘크리트가 되어야 한다”며 “역량 있고, 당원과 국민의 지지를 받는 누구나, 민주당의 확고한 공천 시스템에 따라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했다.
당장 당대표 권한으로 임명할 수 있는 지명직 최고위원(2명)과 당직 인선이 ‘이재명 독주체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가늠자로 꼽힌다. 이 대표는 이날 전대 직후 함께 선출된 최고위원들과 곧장 주요 당직 인선을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날 밤, 당대표 비서실장에 천준호 의원을 임명하고, 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을 내정했다. 두 사람 모두 친이재명계로 분류된다. 박원순계로 분류됐던 천 의원은 지난해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비서실 수석 부실장을 맡았고, <제이티비시>(JTBC) 기자 출신인 박 의원은 이재명 대선 경선 캠프의 선임대변인을 지낸 바 있다.
하지만 정청래, 고민정·서영교(여성), 박찬대, 장경태(청년) 의원 등 선출직 최고위원들이 수도권 의원들로 채워진 만큼, 당대표가 지명할 두명의 지명직 최고위원에 호남, 노동계 인사를 중용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한 비명계 의원은 “공천까지 가기 전에,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어떻게 포용하며 갈지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계파를 안배한 탕평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 대표가 이른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을지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 대표가 ‘여심’(여의도 국회의원 민심)과 ‘당심’(당원 민심)의 괴리를 언급하며 줄곧 당내 의원 집단과 ‘여의도 정치’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탓이다. 벌써부터 친명계(친이재명계)에선 이 대표가 역대 전당대회에서 최고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한 만큼 ‘통합’보다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관건은 이 대표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의제를 갖고 힘 있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냐다. 한 친명계 의원은 “정체성을 유지하되 탄력성을 가지고 당을 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강성 지지층과 강경파 의원들이 주장하는 ‘김건희 특검법’, ‘한동훈 탄핵’ 등의 주장에 곧바로 동조하는 대신, 입법 주도권을 가진 거야의 대표로서 이 대표만의 민생 의제를 갖고 정치적 명분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 삶이 반보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제가 먼저 정부·여당에 협력하고 영수회담을 요청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만들겠다”면서도 “그러나 민생과 경제,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훼손하고 역사를 되돌리는 퇴행과 독주에는 결연히 맞서겠다”고 밝혔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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