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별신굿 탈놀이를 시민들과 함께 관람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6일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대통령 취임 뒤 ‘첫 대구·경북(TK) 방문’이라는 점, 그중에서도 문 대통령이 직접 ‘안동’을 각별히 지목한 것으로 알려져 그 까닭에 관심이 쏠린다.
■ TK 민심 “다독”… 안동 사전에 ‘찜’
문재인 대통령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 계획 가닥이 잡힌 것은 지난 9월 중순께다. 9월5일 국무회의에서 10월2일 임시공휴일 지정안이 의결된 뒤다. 언론에는 9월 말에 개략적인 장소 확정 사실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연휴 기간 국내 관광 및 지역 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지역 전통마을 방문을 계획하고 여러 후보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혀왔지만, 논의 시작 단계부터 후보지는 안동 근교로 압축돼 있었다는 것이 청와대 다수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처음부터 지역은 안동이었고, (그중에서) 어디 어디를 갈 지가 논의 대상이었다”며 “문 대통령께서 취임 뒤 한 번도 TK 지역 방문을 못 했던 측면, 국내 여행 활성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핵심관계자는 “하회마을로 확정한 것은 9월 중순”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직접 안동 방문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고 한다. 지난 8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여름 휴가여행의 테마를 ‘유림 뿌리 찾기’로 잡고 안동 하회마을, 임청각, 도산서원을 비롯해 경주 최부자집과 양동마을, 칠곡 매원마을 등을 찾았는데, 이 중 안동 지역은 문 대통령의 ‘추천’이었다. 당시 이 총리는 안동 법흥동 임청각 앞에 서서 “제 발로 왔지만 대통령의 분부를 받고 왔다. 대통령께 경북으로 휴가를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안동은 꼭 들르라고 하셨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 차원에서 대구·경북 민심 관리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총리를 ‘파견’한 지 두 달 만에 직접 안동을 찾은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6일 류성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는 경북 안동 병산서원을 찾아 종친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직접 지역에 관심을 보이면서 TK 민심을 다독이는 효과는 분명 있다. 특히 유림이 많은 안동은 경북지역에서도 경주와 함께 보수색이 유독 강한 지역이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6년 5월에도 안동 도산서원과 임청각을 방문하며 ‘더민주 험지’에 공을 들였다. 역사에 관심이 깊은 문 대통령은 도산서원을 “정조의 개혁정치가 시작된 역사적 현장”으로, 항일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임청각은 “혁신유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일컬으며, 안동 유림의 ‘개혁적 전통’을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
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全)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 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라며 “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관련기사 보기 :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직접 호명한 독립운동가 6인은 누구? )
■ 이낙연 총리도, 반기문도 찾은 안동 하회마을 의미는
이번에는 ‘하회마을’을 콕 찍은 까닭은 무엇일까? 경북 안동이 일찍 결정됐다면, 그중에서도 하회마을 그리고 서애 류성룡을 기리는 병산서원만 들르기로 확정하는 데에 비교적 시간이 걸렸다. 문 대통령이 평소 즐겨 언급해 온 안동의 임청각은 일정에서 빠졌다. 안동 하회마을은 류성룡의 후손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종택 충효당이 자리하고 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의 영의정으로, 충무공 이순신 등 인재를 천거하고 내치와 외교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당대의 명재상으로 손꼽힌다. 이후 과거의 잘못을 돌이켜 후대에 경계하도록 전한다는 뜻으로 <징비록>(懲毖錄)을 집필했다.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의 뜻을 품고 2016년 5월 귀국 당시 찾았던 곳이 바로 경북 안동 하회마을이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국난 극복’의 의지를 보이고, 보수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는 적절한 장소인 셈이다.
하회마을 일정에 동행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안동이라고 하면 하회탈이라든지 도산서원을 흔히 떠올리는데, 이번에 문 대통령께서 방문하신 곳은 다 류성룡과 관련된 곳”이라며 “물론 임진왜란과 비교할 상황은 아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좀 더 마음을 다잡고 싶은 심경도 있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전까지도 안동 내에서 다른 일정을 더 잡을 것인지, 1박을 할 것인지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엄중한 외교안보 상황에서 북핵 도발 가능성도 있어, 결국 1박도 하지 않고 청와대로 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짧고 굵게 ‘국난 극복 리더십’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년 전에 남긴 방명록을 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역사와 품격에 감동받았습니다. 잘 보존하고 가꾸는 정성은 더 훌륭한 듯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청와대 페이스북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선 안 된다는 취지로 류성룡의 ‘징비(懲毖) 정신’을 거론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의 오찬에서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 정신을 남기셨는데, 불과 몇십 년 만에 병자호란을 겪고, 결국은 일제식민지가 되기도 했고, 6·25전쟁도 겪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 우리가 얼마나 진짜 징비하고 있는지 새겨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 ‘징비’ 통해 리더십 강조…노무현 전 대통령 얽힌 추억도
문 대통령이 류성룡을 빌어 ‘재조산하’·‘징비’ 메시지를 던진 것이, 과거의 잘못을 ‘징계’하겠다는 강한 ‘적폐 청산’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나온다. 오는 10일이면 이명박 정권 국정원의 불법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50일째를 맞아 2라운드로 들어서는 상황 탓도 있다. 청와대는 대체로 ‘과잉해석’이라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하회마을 방문 중 2곳에 방명록을 남겼다. 먼저 찾은 양진당의 방명록엔 “재조산하와 징비의 정신을 되새깁니다”를, 다음에 찾은 병산서원의 방명록에는 “류성룡 선생의 징비정신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새기고 만들어야 할 정신입니다”라고 썼다.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의 ‘재조산하’는 문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슬로건으로 내세웠으며, 역시 역사적 연원이 류성룡에서 기인한 단어다. 양진당에 동행했던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과거의 잘못된 것을 되새기면서 경계로 삼고, 스스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재조산하에도 징비에도 들어 있다. 국민이 촛불을 들었던 이유, 재조산하의 초심을 잊지 않고 가겠다는 것으로 (방명록에 쓰신 글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물로 받은 양반탈을 쓰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적폐 청산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넓게 해석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서애의 종가를 찾았으니 (왜의 침입을 예견하고) 충무공을 천거한 류성룡의 징비 정신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안동 하회마을 방문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문 이후 두 번째 현역 대통령 방문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남긴 방명록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2월 양진당에 남긴 방명록 바로 뒷장에 쓰였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에 따르면, 차담회에 참석한 류왕근 안동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명한 방명록을 꺼내자 모두 놀랐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안동 하회마을에서 열린 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끝난 뒤 출연진과 함께 어깨춤을 추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하회별신굿탈놀이 관람도 똑같이 했다. 당시 마루에 앉아 공연을 관람한 노 전 대통령은 공연 뒤 출연자에게서 선물로 받은 양반 탈을 쓰고 “비슷하니 껴?” (비슷합니까?) 하고 안동사투리를 흉내 내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은 일반 시민들과 함께 섞여 앉아 공연을 관람한 뒤, 무대에서 어깨춤을 추는 모습이 공개됐다. 함께 한 시민들이 찍어올린 영상을 보면, 공연 말미 각시탈을 머리 위로 걷어올린 출연자가 무대를 돌며 관중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하다 문 대통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악수하려는 줄 알고 일어나 두 손으로 맞는 문 대통령을 이 출연자는 무대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주영훈 경호실장이 서둘러 따르고, 김정숙 여사까지 일어나자 관중들은 흥겨워하며 지켜봤다.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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