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며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발도 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노동신문>이 5일 보도했다. 다만 김여정 부부장은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노동신문> 2면 맨 위에 실린 개인 명의 ‘담화’에서 “쌍방의 군대가 서로 싸우면 전쟁이나 전투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우리 민족 전체가 반세기 전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전쟁을 반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부부장은 “이것은 순수 핵보유국과의 군사력 대비로 보는 견해가 아니라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이미 남조선이 우리의 주적이 아님을 명백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김 부부장은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표현을 두 차례 반복 사용했다. 지난해 10월11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연설을 통해 “이 땅에서 동족끼리 무장을 사용하는 끔찍한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고 밝힌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며 강조한 것이다.
김 부부장은 이틀 전 담화에서처럼 이번에도 서욱 국방부 장관의 지난 1일 ‘북 미사일 발사 징후 명확 때 원점·정밀 타격’ 발언을 겨냥해 거듭 비판했는데 그 수위는 낮췄다. 예컨대 “남조선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일 우리 군대의 대남 타격 가능 수단들에 대한 ‘선제타격’을 운운하며 극도의 불안감을 드러냈다”고 짚은 뒤 “저들 군대가 그만큼 잘 준비돼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소개하고 싶었을 수 있는 자리였다고 본다. 그렇다고 군을 대표한다는 자가 우리를 향해 적으로 칭하며 ‘선제타격’을 운운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대단히 큰 실수”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 김 부부장은 “남조선이 설사 오판으로 인해서든 서욱이 언급한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상황은 달라진다”며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핵 무력의 사명은 우선 그런 전쟁에 말려들지 말자는 것이 기본이지만 일단 전쟁 상황에서라면 그 사명은 타방의 군사력을 일거에 제거하는 것으로 바뀐다”고 덧붙였다. 남쪽의 “선제타격과 같은 군사행동”에 ‘핵’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공갈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 3일 담화와 기본적으로 같은 주장”이라며 “핵보유국 지위나 핵무력 등을 거론하는 부분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어느 때보다 한반도 상황이 유동적인 시기”라며 “한반도 상황의 평화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이 이틀 간격으로 두 차례 담화를 낸 맥락은 크게 봐서 대남 신호와 내부용으로 나눠 짚어볼 수 있다.
우선 대남 신호 측면에선 한 달 뒤면 임기가 끝나는 문재인 정부의 국방장관보다는 5월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를 더 중요한 ‘수신 대상’으로 삼은 담화로 읽힌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도 ‘대상’을 적시하지 않은 채 “핵보유국에 대한 선제타격?…가당치 않다. 망상이다. 진짜 그야말로 미친놈의 객기이다”라고 거친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핵 전투무력이 동원”되면 “남조선군은 괴멸, 전멸에 가까운 참담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남조선이 군사적 망동질을 하는 경우 우리의 대응과 그 후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인 동시에 또한 남조선이 핵보유국을 상대로 군사적 망상을 삼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겉으론 서욱 장관의 1일 발언을 겨냥한 듯하지만, 실제 ‘희망 수신처’는 대선 기간에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북 미사일 발사 징후 때 대북 선제타격’ 의지를 강조하는 등 대북 강경 기조를 밝혀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로 보인다. 5월10일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견제하려는 속내를 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북은 “핵강국”으로서 ‘외침’을 막아내기에 충분한 군사력을 갖췄으니 ‘인민들은 안심하라’는 민심 다독이기 성격도 강한 듯하다. 김 부부장의 두 차례 담화가 노동당 중앙위 기관지로 ‘인민 필독서’인 <노동신문>에 실린 사실이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한다. 북은 대남·대미 ‘신호’ 발신 땐 대체로 일반 인민이 읽을 수 없는 대외용인 <조선중앙통신>을 활용하고 <노동신문>엔 싣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신문>에 담화가 거듭 실린 사실은 ‘내부 관객’을 중요한 수신처로 삼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 편을 들고 있으나, 강대국의 약소국 침공에 따른 민심 동요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3월24일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하며 “누구든 우리 국가의 안전을 침해하려든다면 반드시 처절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강조하고, 관련해 <노동신문>이 “무적의 자위적 핵전쟁 억제력”을 거듭 강조한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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