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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고발권 폐지? 대통령 거짓말 두둔하는 공정위원장

등록 2016-11-01 16:50수정 2016-11-01 17:40

정치BAR_윤형중의 윤중로 산책_스텝 꼬인 정재찬 위원장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다음 중 나머지 세 단어와 의미가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① 완전 폐지 ② 폐지 ③ 사실상 폐지 ④ 완화

정답은 ①입니다. ‘완전 폐지’ 만이 다른 뜻이고, 폐지· 사실상 폐지· 완화는 모두 같은 뜻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요? 이것은 시장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 정재찬 위원장이 28일 오후 국회에서 재정의한 단어의 의미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했다”고 주장한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내실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실행했다고 자찬하며 그 예로 “전속고발제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을 꼽았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는 25일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팩트체크하며 “전속고발제는 엄연히 남아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보도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전속고발제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위반되는 사안은 공정거래위원회만 고발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소송의 남용을 막아 기업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존속해왔지만, 범죄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고,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단이 된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헌법소원이 제기돼 1995년 7월엔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일부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고, 이 지적을 받아들여 이듬해인 1996년 12월30일에 검찰에게 고발요청권을 부여하고, 공정위는 검찰의 요청을 받으면 반드시 고발해야 하는 내용을 법률에 반영했습니다. 이렇게 보완 입법이 된 이후에도 ‘전속고발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당시 유력 후보 모두가 이 제도의 폐지를 약속했습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인 ‘세상을 바꾸는 약속’ 149쪽을 보면 다른 조건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 폐지’라는 공약만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간한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보고서 53쪽을 보면 “공정거래법 및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고발 요청권한을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에게도 부여”라고 공약을 수정했고, 수정된 내용이 2013년 8월 법률에 반영됩니다. 따라서 엄밀히 보면 ‘전속고발제는 폐지된 것이 아니라 유지’됐고, ‘검찰총장만 가지고 있던 고발요청권을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에게 확대’한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4일이 지난 10월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이 전속고발제의 폐지 여부가 논란이었습니다. 포문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열었습니다.

박용진 의원 : 공정거래 위원장님, 전속고발권이 지금 폐지됐나요?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 사실상 폐지 됐습니다.

박용진 의원 : 사실상 폐지이면 폐지인가요, 폐지가 아닌가요?

정재찬 위원장 : 폐지로 봐야죠.

박용진 의원 : 그래요? 지금 전속고발권이 누구누구가 하고 있는지 아시잖아요?

정재찬 위원장 : 네.

박용진 의원 : 근데 왜 폐지예요?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는 것은 그렇게 누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할 수도 있고 누구나 고발할 수 있는 것 아니예요?

정재찬 위원장 : 그런데 대부분은 지금 4개 기관에서..

박용진 의원 : 그건 알고요. 제가 이 말씀 왜 드리냐 하면, 대통령께서 전속고발권 폐지했다고 지난번 시정연설에서 얘기하시던데요, 그게 맞아요? 근데 대통령은 사실상 폐지라고 안 하셨습니다.

정재찬 위원장 : 사실상 폐지나, 폐지나...

박용진 의원 : 사실상 폐지가 전면 폐지다?

정재찬 위원장 : 전면 폐지 뭐 이런 말씀은 안하셨지만은...폐지라 보는 것입니다.

박용진 의원 : 아니 위원장님, 우리가 지금 국어사전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정재찬 위원장 : 네.

박용진 의원 : 그러니까 지금 위원장님 말씀하고 대통령 표현하고, 이전까지 상임위 오셔서 하신 말씀하고 전혀 다른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대통령 말씀이 맞습니까? 폐지됐습니까?

정재찬 위원장 : 대통령께서 제가 말씀드린 그런 뜻으로 아마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어서 박용진 의원은 정부 고위관료로서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한다고 조언합니다.

“위원장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느냐면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잘못된 사실을 국민들에게 얘기를 하시고 국회 와서 얘기를 했으면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는 있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폐지가 아니라 사실상 폐지입니다’라고 고치시던지, 아니면 ‘전속고발권 자체는 여전히 있습니다’라고 하셔야죠. 대통령이 그렇게 얘기하신 걸 국민들이 ‘사실상 폐지’로 받아들이겠어요? ‘아, 저거 폐지한다고 공약했는데 폐지했나보다’라고 생각하시지. 그런데 지금 제가 답답한 것은 어느 누구하나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얘기하지 않으니까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아니예요?”

“완전 폐지 곤란하다”던 정 위원장, “사실상 폐지이므로 폐지가 맞다”며 말장난

박용진 의원은 이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했다는 대통령의 연설을 문제 삼으려고 했으나, 주어진 발언 시간이 종료돼 마이크가 꺼졌습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이 제대로 공박되지 못하고, 발언이 끝난 셈이죠. 이 때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습니다. 민 의원은 이전 국정감사와 지난 4월 총선에서 야당의 ‘전속고발제 폐지’ 당론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대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민병두 의원 : 대통령께서 폐지되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 ‘완화’를 잘못 이해하고 쓰신 표현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이 자리에서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감에서도 그렇고, 지난번 법안 심의할 때도 우리가 완화를 했지, 폐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지 않았습니까? 근데 오늘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사실상 폐지라는 말을 갖다가, 법률에도 없는, 법률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용어를 써가면서 사실상 폐지됐다고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뒷받침하는 언행을 여기서 구사하면 어떻게 우리가 앞으로 법률심의나 국정논의에 있어 올바른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아니죠.

정재찬 위원장 : 지금까지 저희가 국회라든지 여러 가지 자료를 제출하거나 답변할 때 사실상 폐지라는 말을 계속 써왔습니다.

민병두 의원 : 저는 그런 기억이 없고 얼마 전에 국정감사에서도 몇 분 질의할 때, 지금까지 “폐지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분명히 말씀하셨죠.

정재찬 위원장 : 완전 폐지하자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완전 폐지는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다.

민병두 의원 : 그니까 완전 폐지, 폐지, 사실상 폐지, 완화 등 네 가지 언어가 나오는데 정확히 구분해서 쓰셔야죠. 그러면 완화부터 폐지가 다 동의어가 되잖아요.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이날 국회에서의 논의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정 위원장이 완전 폐지, 폐지, 사실상 폐지 등의 용어를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논리적으로 한번 따져볼 필요도 있습니다. 특히 정 위원장이 표현한 ‘사실상 폐지’가 논리적으로나 실효적으로 타당한 걸까요? 정 위원장의 주장대로 다른 기관에게 고발 요청 권한을 줬다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제도가 폐지된 거라면 이미 이 제도는 검찰에 요청권한을 부여한 1996년에도 ‘사실상 폐지’된 것입니다. 2013년엔 이 요청 권한을 검찰 뿐 아니라 중소기업청, 감사원, 조달청 등 세 기관에 더 준 것에 불과하니까요. 범죄 피해자들이 이 세 기관을 통해 원활하게 고발을 요청하고, 이를 공정위가 받아들여 활발히 고발했다면 그 실효성을 인정해 ‘사실상 폐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난해 공정위가 처리한 4367건 중에 고발건수는 56건으로 전체의 1.3%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3년간 세 기관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한 건수도 12건에 불과했죠. 비선실세가 미리 감수한다고 알려진 요즘처럼 대통령 연설의 신뢰가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 대통령의 연설을 주무 부처의 장관급 공직자조차 바로잡지 못한다면 누가 대통령의 발언을,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 있을까요. 걱정이 더 깊어갑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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