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성추행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 최교일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홍준표 대표를 만난 후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당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31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 기억에는 그런 일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라고 호통친 검사장급 인사가 최 의원”이라고 임은정 검사가 <한겨레>에 밝힌 뒤 이틀만의 ‘침묵’을 깨고 낸 해명입니다.
최 의원은 저녁 6시30분께 페이스북에 “사건의 경위를 떠나 검찰국장 재직 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데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며 저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에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임 검사의 증언에 대해서는 “기억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저와 4년간 같이 근무한 검사가 4년 동안 화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통상 화를 내지 않으며, 이 사건에 관하여 아무리 생각해도 제 기억에는 임은정 검사를 불러 질책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러나 임은정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이면 성추행 사건은 개인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으로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는데 이를 떠들고 다니는 것은 맞지 않다는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되고 호통을 쳤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최 의원의 전화기는 여전히 전원이 꺼진 상태입니다.
■ 휴대전화 끈 채 페이스북 통해 “기억 없다” “수긍 안돼”
밀양 화재 참사를 계기로 소방관련법 등을 통과시키기 위해 열린 본회의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잠적’했던 최 의원은, 31일 오전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홍준표 당 대표 등 당 지도부와 만났습니다. 그동안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해 온 최 의원이었기 때문에, 이날 당사에선 기자들과의 ‘최의원 찾기’ 숨바꼭질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1시 최고위 시작 직전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바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최 의원은 곧바로 기자들의 출입이 통제된 당사 6층 회의실 복도 안으로 모습을 감췄습니다. 최 의원은 최고위원은 아니지만, 이날 최고위 안건이 지방선거에 대비해 공천 규칙을 바꾸는 등을 포함한 당헌·당규 개정안이었기 때문에 당 법률지원단장이자 당헌·당규개정TF팀장 자격으로 최고위에 보고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1시50분께 최고위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참석자들 가운데 최 의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은 출입 제한이 풀린 당사 복도에서 최 의원을 찾아 헤맸습니다. 일일이 다른 회의실 방 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 보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당 대표실만 들어가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대표실로 통하는 비서실 문이 열릴 때마다 기웃거렸지만, 최 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당 대표실에서 나온 한 의원은 최 의원이 그 안에 있느냐는 질문에 “보지 못했다. 최고위에서도 먼저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당사 입구 1층을 지키던 기자도 최 의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기자들은 나오면서 “건물 어딘가에 지금도 숨어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31일 오전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는 가운데 기자들이 최교일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정유경 기자
■ 기자들과 ‘숨바꼭질’ 벌인 최교일
최 의원이 다시 목격된 것은 2시간 뒤, 기자들 대다수가 당사를 떠난 낮12시47분께였습니다. 최 의원은 홍준표 당 대표와 함께 당 대표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습니다. 현장을 목격한 사진기자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날 일부 당 보직 간부들은 최고위가 끝난 뒤 당 대표실로 들어가 환담을 나눴고 점심 도시락 7개가 배달됐습니다. 최 의원은 11시50분께 최고위 비공개가 풀리기 전 일찌감치 당 대표실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 자유한국당은 최고위 도중인 11시36분께 신보라 원내대변인 명의로 “미투 캠페인 확산에 주목하며 갑질 성범죄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논평을 냈습니다.
“ (선략)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이번 폭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여성들이 성범죄 가해자를 고발하는 미투(Metoo) 캠페인이 한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특히 갑질 성범죄가 근절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적극 노력하겠다. (중략) 정부는 중앙부처 및 공공기관 성범죄 전수조사까지 대대적으로 벌여 공직사회의 성범죄부터 엄단해 어떠한 이유로든 성차별적 행위와 성범죄는 용납될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 당 차원 자체조사 없다
하지만 정작 자유한국당은 이날 최고위에서는 최 의원과 관련된 안건은 논의되지 않았으며, 당 자체 차원의 조사도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고위 직후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우원식 원내대표가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성폭력에 반대하는 하얀 장미를 들고 나온 점을 두고 “서지현 검사의 눈물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구두논평을 내며 날을 세웠습니다.
또 이번 사건에 대한 당의 자체조사 방침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 검사의 눈물을 우리 정치권에서 결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될 것”이라며 “그 부분은 검찰에서 조사한다고 한다. 검찰이 서 검사의 눈물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사가 되기 전에 이것을 이용해서 정치 공세 퍼붓는 것을 서 검사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조사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그건 (최교일)본인에게 물어보라”고 말을 자르기도 했습니다.
장 대변인은 “이 문제를 여야 문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문제로 논의하는 것은, 밀양 참사 등 국민의 죽음 앞에서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정치공세를 했던 민주당이 또다시 한 검사의 피눈물을 가지고 또다시 자유한국당 (책임으로 몰려) 한다면, 그야말로 정치공세, 못된 버릇”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사건은 당 차원의 일이 아니며,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민주당의 정치공세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최 의원이 비록 의원이 되기 전 일이라고 해도, 당시 적극적으로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 차원의 해명이나 개인 소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당 내에서는 최소한 여성의원들이라도 최 의원에 대한 자체조사를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습니다. 이렇듯 여론이 심상치 않자, 당 지도부와 ‘긴 대화’를 마친 최 의원이 이날 저녁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