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정부 누리집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제조사별 재난망 단말기 교육영상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이
이태원 참사 당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소방청과 시·도 소방본부가 요청한 통신망 전용 단말기 구축 예산이 3년 연속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 분야에선 단말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보유한 단말기를 빌려쓴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 이태원참사국정조사특위 위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7일 소방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3년간 소방청과 시·도 소방본부가 재난안전통신망 단말기 구매를 위해 정부에 요청한 예산은 780억원이지만 최종 예산에는 330억원만 반영됐다. 제1차 재난안전통신망 기본계획에 제시된 목표이자, 통신망 운영에 필요한 최소 수량인 단말기 1만8천대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예산이었지만 절반도 안 되는 금액만 편성된 것이다. 소방청과 지방 본부는 2020년 88억5700만원, 2021년 453억2900만원, 지난해 238억5300만원을 각각 중앙정부와 각 시·도에 요청했지만 실제론 9억7200만원(2020년), 150억6600만원(2021년), 170억5100만원(2022년)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25일 저녁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서울 용산구 지하철 녹사평역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성탄절을 맞아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미사가 열렸다. 미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소방 쪽은 부족한 단말기 문제를 해결하려 2019년부터 행정안전부가 보유한 단말기를 임대해 사용했다. 올해 11월 하순 기준 보급된 2만623대 중 1870대가 행안부에서 빌려온 단말기다. 강원 소방본부의 경우 1623대 중 856대가 행안부 단말기다. 반면 경찰은 지난해 12월 14만대에 이르는 단말기 보급을 마무리했다. 경찰과 소방의 격차가 벌어진 것은 경찰의 경우 전액 국고로 단말기를 사들였지만 시·도 소방본부의 경우 ‘소방안전교부세’를 활용해 시·도별로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탓이다. 궁색한 지방정부의 살림살이에서 쪼개어 쓰다보니, 편성이 미뤄진 것이다. 결국 정부가 1조5천억원이나 들여 재난안전통신망을 도입하고도,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단말기 예산은 소극적으로 편성해 통신망이 무력화됐단 비판이 나온다.
장혜영 의원은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해 온 재난안전통신망이 결국 단말기 보급조차 엇박자를 보이면서 무용지물이 된 셈”이라며 “‘제1차 재난안전통신망 기본계획’을 통해 ‘국민을 위한 재난안전통신망’을 비전으로 제시한 만큼 정부는 단말기의 조속한 보급을 위해 예산 확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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