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강도·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하고 대문을 닫아야 한다”며 자신을 향해 제기된 ‘불체포특권 포기’ 요구에 선을 그었다. 야당 안팎에서 불체포특권 포기 등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이 대표가 직접 나서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당시 불체포특권 폐지를 공약했는데 특권을 내려놓고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계획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시엔) 지금처럼 없는 사건을 만들어서 조작하는 걸 대놓고 할 것까지는 예상 못했다”며 “상황이 참으로 엄혹하게 본질적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시대, 모두가 규칙을 지키고 예측 가능한 사회에는 담장도 없애고 대문도 열어놓고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강도·깡패가 날뛰는 무법천지가 되면 당연히 담장이 있어야 하고 대문을 닫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에선 헌법상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포기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국회 보고를 하루 앞두고 열렸다. 이 대표는 96분 동안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의 영장청구서 내용을 반박하는 한편, 윤석열 정부와 검찰을 향한 거센 역공에 나섰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법치의 탈을 쓴 사법사냥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폭력의 시대”라며 “경제·민생이 어렵고 한반도 전운을 드리우는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가) 문제 해결보다는 ‘어떻게 야당을 파괴하고 정적을 제거할까,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구도를 바꿀까’에 골몰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경을 넘어 오랑캐가 불법 침략을 하면 열심히 싸워 격퇴해야 한다. 저는 그걸 정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법리스크가 아닌 검찰리스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대신 검찰과 직접 사활을 건 진검승부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현재 시점에선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라고 전했다.
당내에선 27일로 예정된 체포동의안 표결보다 ‘표결 이후’에 대한 위기의식이 쌓이고 있다. 일단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기로 뜻을 모았지만, 검찰이 거듭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당의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판단 속에, 민주당 안에선 이 대표가 적절한 시점에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대표를 향해 “국민들에게 좀 감동을 주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구속이) 된들, 그 정도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먹으려고 하면 되겠냐”고 말했다. 체포동의안 처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지말고 당당하게 영장실질심사에 임하라는 취지다. 유 전 총장은 “거기에서 당당하게 (영장이 기각돼) 돌아오면 그 다음에 (당내에서 이 대표의) 거취를 가지고 누가 얘기를 하겠느냐. 아마 당 지지율도 꽤 올라가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비이재명계인 조응천 의원도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론조사 추세를 보면 지금 완연한 하락세로, 검찰이 쪼개기 영장으로 계속 들어올 것 같은데 그때마다 어떻게 할 거냐”며 “이번에는 부결을 시키되 이 대표가 (추후) 모종의 결단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이 대표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사법사냥’ ‘오랑캐 침략’이라는 표현으로 윤석열 정부와 검찰을 비판한 것에 대해 “말씀이 점점 험해지시는 것 같은데 새로운 얘기 같지는 않다”며 “그 얘기를 판사 앞에 가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