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충남 계룡대 해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 관계자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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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국방부 군사보좌관이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 사령관에게 ‘(경찰에) 수사 의뢰 대상을 줄여라’라는 취지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군사보좌관의 메시지가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 장관 지시로 인식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동안 채 상병 사건 수사와 관련해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16일 한겨레가 확보한 대화록 자료를 보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은 지난 8월1일 낮 12시6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는 국방부 검찰단이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항명 사건의 증거물로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한 사회관계망(SNS) 대화록 가운데 일부다.
당시 박 군사보좌관의 메시지 취지는 ‘8명을 수사 의뢰하겠다’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이틀 전 보고에 대해 수사의뢰 인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해달라는 것이다. 지난 7월30일 오후 4시30분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서 이종섭 장관에게 “해병 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관할 경찰서로 이첩 예정”이라고 대면보고해, 결재를 받았다.
박 군사보좌관의 메시지는 지금까지 국방부 주장과 충돌한다. 국방부는 장관 국회 답변, 언론 브리핑 등을 통해 “장관은 이첩 보류만 지시했을 뿐 특정인 혐의 제외나 수사자료 정리 등의 내용을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설명해왔다. 지휘책임은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관리감독 책임을 묻는 것이므로, 군사보좌관이 언급한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채 상병 순직 당시 현장에 있던 중대장, 대대장보다 상급자인 여단장, 사단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시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의 책임을 묻는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에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박 전 단장이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국방부 군사보좌관과 해병대 사령관과의 개인적인 에스엔에스를 통한 문답이 오고 간 것이라 어떤 의도의 문답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두 사람 간 문자 내용에 수사의뢰 대상자를) ‘줄여라’라는 단어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흘(7월30·31일, 8월1일)간 이뤄진 두 사람 문답을 개인 간 문자로 보긴 어렵다. 육군 준장(별 1개)인 군사보좌관의 메시지에 중장(별 3개)인 해병대 사령관이 정중한 높임말로 즉시 회신하고 있다. 군사보좌관이 장관 지시사항·정책 관리, 의전을 맡기 때문에 군 내에서는 장관의 뜻을 전달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군사보좌관은 8월1일 오전 10시28분 “수사단장은 법무관리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메시지도 김 사령관에게 보냈다. 7월31일 오후 3시18분과 8월1일 오전 9시43분에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게 전화해 “수사 대상을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야 한다” 등 사건을 축소하라는 압박을 했다는 게 박 전 단장의 주장이다. 박 전 단장이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말을 듣지 않자 장관 최측근인 군사보좌관이 박 전 단장 상관인 해병대 사령관을 압박한 모양새다.
박 군사보좌관은 최근 장성 인사에서 소장으로 진급해 육군 56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소장 계급을 유지한 채 정책연수를 갔고, 김계환 사령관은 유임됐다. 대통령실의 외압 전달 통로 의혹이 나왔던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은 중장으로 진급해 국방대학교 총장이 됐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