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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최장집 “개혁적 환경 좋았는데…무산시켰다”

등록 2007-06-16 09:55수정 2007-06-16 20:10

최장집 고려대 교수. 강창광 기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 강창광 기자
[6월항쟁 20돌 끝나지 않은 6월] 2부 한국사회 어디로
②한국사회 미래 논쟁<상> 최장집교수와의 좌담
6월항쟁 이후 민주주의 현주소
민주정부들 기대만큼 성과못내

최장집 교수(이하 최)=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윤리적으로 피폐화되고, 퇴영적이 되고 있다. 민주정부들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 결과다.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그 에너지, 그 당시(6월항쟁)에 희망하고 갈망했던 것을 정치의 방법으로 결집해 우리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갖지 못했다. 정당의 공고화 없는 민주주의의 공고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정당없는 민주주의가 계속되었다. 이것이 사태를 퇴행적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지금 내가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다’라고 강조하고 싶다. 민주주의 핵심은 절차적 민주주의이고, 문제도 거기서 발생한다. 정치적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사회의 다른 수준, 하위영역으로 확산된다. 민주주의가 작동한 결과의 사회적 내용을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민주주의의 사회화’라고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가 확산돼 나가면서 사회 자체가 변하고, 사회경제적 시민권이 확대되는데, 또 역으로 이것이 기반이 돼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강화, 확대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민주주의는 이러한 순환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절차적 민주화가 끝나고 이제 실질적 민주주의로 넘어가야 한다거나,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공고화를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로 짝지어 구분하는 것에 대해 나는 생각을 달리 한다.

6월항쟁 이후 우리가 얻은 것, 잃은 것

최장집 고려대 교수. 강창광 기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 강창광 기자
최장집 교수는=최장집 고려대 교수(64)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국 정치를 진단·분석해온 진보적 정치학계의 원로이다.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당정치의 정상화’와 ‘민주적 시장경제 구축’을 시대적 과제로 강조해왔다. 올초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에 권력을 넘겨도 좋다”고 발언해 이른바 ‘진보논쟁’을 촉발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았다가 보수언론의 색깔론 시비를 겪기도 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박사 △고려대 교수(정치학) △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

최장집 교수와의 좌담: 김호기 연세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일시·장소: 8일 오전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김호기 “한국 민주주의 절반의 실패”
정해구 “인권·자유 진전 지속 가능하냐 문제”

김호기 교수(이하 김)= ‘민주화의 아이러니’ 같은 것을 얘기할 수 있겠다. 민주화는 마감되지만 민주주의의 본래 목적인 자율성, 공공성 강화는 더욱 중요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돌아보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보고 싶다. 민주화를 정치 민주화와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나눠본다면 두 영역 모두에서 성공과 실패가 동시에 발견된다. 특히 공공성과 형평성이 강화돼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화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실패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정해구 교수(이하 정)=인권과 자유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진전된 것이 사실이다. 최근 와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악화되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지속시킬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다.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전면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음으로써 민주주의의 인식에 혼란을 주는 상황이 됐다. 민주주의가 일종의 헤게모니가 되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발전 방향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며 희화화하는 상황이다. 불안불안하게 민주주의를 끌어왔지만, 당면한 문제는 이 민주주의가 지속 가능하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할수 있는 개혁, 하지 않았다

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개혁적이라고 자임했는데 왜 그런 레토릭에 맞지 않게 상층편향적 수혜구조나 기득권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타협했느냐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반적인 차원 혹은 제도적인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책임성, 대통령직의 역할, 정책의 내용 등에 있어서 개혁적 혹은 민주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노무현 정부는 정치를 비속화했다.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를 통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강조하는데, 권위와 권위주의, 탈권위와 탈권위주의는 전혀 동일하지 않다. 민주주의는 좋은 권위를 필요로 한다. 권위는 지도자가 갖는 핵심요건이고, 민주주의의 발전과 강화에 있어 지도자의 존재 혹은 권위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우리의 관심은 일상에서 권위가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말하는 것으로 대통령직이 가져야 할 민주적 권위가 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또, 문제를 선악으로 구분해서 보고,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동원하고, 불필요하게 사회에 갈등과 대립을 불러왔다. 정치적 어젠다를 여러가지 정치적 방법, 정당과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 설정하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동원했다. 이것이 정부의 지지자와 반대자들 사이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를 가능하지 않게 하고, 집권세력 안에서도 내부 비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정부가 개혁의 궤도를 벗어났다고 비판하면 여러 방법으로 공격이나 압박이 들어온다. 이러한 분위기는 반지성주의, 반이성주의 풍조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이성이나 지성을 통해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대화의 환경이 나빠지거나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

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고 해서 민주적으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와서는 이런 현상이 현저하게 적어졌다. 지식인들의 정부 참여가 늘어나면서 지식인의 비판적 역할이 사라졌다. 이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활력을 소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구 권위주의 세력으로부터 오는 제약조건은 약화된 반면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은 많이 열려 있었다. 2004년에는, 우연이지만 탄핵의 결과로 민주화 이후 첫번째로 여소야대가 아닌 상황을 맞기도 했다. 말하자면 행정부와 의회 다수를 갖게 된 것인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좋은 개혁적 환경을 향유했던 지도자는 없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돌아와 취한 태도는 개혁과 멀어졌다. 나는 탄핵 때까지는 많이 기대했는데, 그 이후 기대와 너무 달랐다. 이 좋은 환경을 무산시키고 있을 때 허무하다고 할까, 노무현 정부는 환경을 갖추고도 스스로 실패해 실망감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은 부작위를 비판하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강창광 기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 강창광 기자
김= 노무현 정부는 탈권위주의와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 깨끗한 정치의 진척 등을 이뤘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국정목표와 그 결과를 비교해 보면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내수시장의 성장이나 국민소득 증가에서 그 지표의 실제 성과는 좋지 않다.

정= 참여정부는 정책보다 정치에서 실패했다. 정책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급진적으로 수용하면서 자기 지지기반의 해체를 가져왔다. 지역주의 극복에 너무 급진적으로 접근했다. 지역주의를 민주적 기반이 되는 쪽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급진적으로 해체하려고 시도하다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지지기반을 해체시켰다. 지금의 정치적 어려움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운동·이익집단은 한계…정당만이 대안”

한나라당 집권에 대해…민중삶 나빠진다 단정 곤란

최 교수= 민주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다.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 경쟁의 결과가 불확실할 때 민주주의의 역동성이 작동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 것은 유권자가 현 정부의 국정수행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결과로 그렇게 된다면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 정치를 하지 않고, 정치 바깥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원리를 생각하고 관찰하는 내 입장에서 볼 때 한나라당의 집권을 생각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대선구도로 수구 대 범여권 구도를 말하는데, 100% 동의 안 한다. 한나라당 집권이란 두려움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룬 민주성과가 역전 또는 전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를 동원하고 이런 것을 도덕적 문제로 보게끔 하는 담론을 자극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민중의 삶의 구조가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나빠진다는 가정도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민주주의의 작동은 한나라당과 같이 보수적인 정당이라 하더라도 정치경제적 상황에선 투표자의 눈치를 보도록 만든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강점이다.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고, 민주주의가 약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그렇다. 민중의 삶이 이 정부에서 개선되지 않았고,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정책차원의 차이가 사실상 크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단정하기도 어렵다. 정치경쟁의 구조가 좀더 합리화되고 정당들이 폭넓은 내용으로 경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당체제가 변해야 한다. 이런 것을 상정하면서 진보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지 절대 한나라당은 안 되고 어떻게 해서든 범여권이 집권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김=범여권 일각에서 ‘민주개혁평화미래세력 총집결’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데 어떻게 집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미에프티에이에 대해 어떤 동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비정규직에 대해 어떤 공통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지 회의스럽다. 민주화 담론을 넘어서 개혁 세력을 새롭게 결집시킬 수 있는 시대정신, 예를 들어 ‘사회통합적 세계화’ 또는 ‘낙오자 없는 세계화’ 같은 비전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와 선진화 담론…세계화 자체가 양극화 만들진 않아

최=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체가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만들고 사회경제적 문제를 악화시킨다고는 보지 않는다. 싫든 좋든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보편적 가치이자 원리가 된지 오래다. 하나의 독트린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50~6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보편적 질서를 만든 것처럼.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실제 내용은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때문에 양극화·빈부차·중산층 해체가 나타났다기보다는 그것에 정치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도 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각국이 대응한 방식은 다르다. ‘시라크 보수당 정부-사회당 총리’시절 프랑스는 일반 의료보험체계를 수용하고 의료보험으로 99%를 커버하게 됐다. 가난한 사람까지 거의 전부 사회복지 혜택을 준 것이다. 미국은 사회복지로 커버되지 않는 비율이 15%나 된다. 정치가 신자유주의에 대응하기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다르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했다고 해서 시장일방주의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정치가 어떻게 대응하고 대안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김호기 “개혁세력 새롭게 결집시킬 시대비전 필요”
정해구 “사회통합·복지가 새 시대정신 될 수 있어”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강창광 기자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강창광 기자
선진화 담론이라는 언어는 정치지도자이든 지식인이든 엘리트가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사전에 설정하고 그 목표를 정의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의 주체랄까, 인민주권의 원리에 비추어 보면 문제가 밑으로부터 제기되고 스스로 대표를 만드는 형태로 가야 하는데, 선진화 담론은 위로부터 목표가 주어지고 가치가 부여되는 구조의 담론으로 이해된다. 발전주의적 담론 혹은 ‘제2근대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고 단계를 구분짓는 자체도 그렇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의미있는 구분이라고 보지만, 선진화는 그 내용이 정의하기 나름이고 또 달성해야 할 목표에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동원되는 담론 형식을 가짐으로 내가 생각하는 관점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국가운영학 혹은 치국책’의 원리랄까, 기술합리적 효율적 운영을 강조하는 접근법과 발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앞으로 민주화 이후의 담론이 뭐냐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것이 가져온 여러 사회·문화 효과에 압도적으로 영향받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나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강조하고 싶다. 신자유주의가 자유주의의 연장선에 있을까? 나는 이 두 가지가 질적으로 종류가 다른 가치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시장에서 사기업 활동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며, 이 조건에서 개인의 자유나 인간적 가치는 상대적으로 배제되고 고려되지 않는 이념적 틀이 신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적 자율, 평등사상 등 인간적 가치를 기본에 둔다. 시장은 사회전체를 구성하는 여러 부문들의 한 하위단위인데, 지금은 시장이 전체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가 됨으로써 인간적인 가치가 그보다 다 하위로 떨어지고 해체되는 구조다.

진보개혁진영, 이번 대선 어떻게?

분단체제론에 대해…감정이나 의식으론 해결안돼

최=남북한의 분단체제 극복은 점진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민족감정이나 통일의식 이런 것으로는 해결된다고 보지 않는다. 분단체제 형성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갈등이고 국제정치·냉전의 산물이다. 반세기 이상 아주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냉정하게 점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민족감정이나 통일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한미관계나 한일관계와 같은 국가간 관계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대칭적이다. 이게 정치적 문제와 충돌하면 그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지 매우 위험하다. 분단체제를 다루는 문제에 관한 한 장기적으로, 평화중심적으로 대립과 갈등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 남북한이 공존하는 단계라든가 평화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 등등 구체적인 문제는 전문가들의 몫이겠지만, 분단체제 극복을 통일담론과 직결해서 다루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내 생각의 핵심이다.

김=분단체제는 진보개혁 지식사회에서 늘 뇌관이 된 문제다. 이성과 논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서적이고 삶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서적 휘발성이 대단히 높은 주제다. 평화의 관점에서 분단과 통일을 전망해야 한다. 백낙청 교수가 지적했듯 사회과학자들의 인식의 지평이 국민국가 내지 세계체제에 맞춰져 있어 그 중간 영역인 분단체제를 과소평가 했다는 비판은 수긍한다.

정=평화의 측면에서 남북관계를 끌고나갈 정책이 필요하다. 평화는 보편적이지만 남북간 격차가 심하고 북한이 도발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평화체제 속에서 남북 번영이 무엇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진보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등장한다면 평화의 측면에서 자기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정치의 희망은?…대통령 후보군 자기말 안하니…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운데)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왼쪽),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함께 지난 8일 고려대 교정에서 ‘민주주의’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기자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운데)가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왼쪽),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함께 지난 8일 고려대 교정에서 ‘민주주의’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기자

정=우리 정치에서 새로운 희망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회통합이나 복지가 새 시대정신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할 필요있지 않을까 싶다.

최=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생각해야 하는데,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당, 사회운동, 이익집단, 시민사회가 조직할 수 있는 여러 자율적 집단의 정치활동이다. 거기서 정당을 가장 강조하는 게 내 입장이다. 운동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효능면에서 운동은 항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기와 같이 분명한 목표도 없다. 민주화 이후 단계에서 운동의 효능에 대한 한계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익집단을 통해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이익집단은 집단의 특수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 사회의 윤리, 공익이나 규범을 얼마나 창출할 수 있을까에 의문이 생긴다. 정당만이 사회 내에서의 갈등을 분출할 수 있도록 하고, 갈등을 통해 권력을 추구하는 게 인간성의 일부이니까 정당은 그런 것을 묶어주면서, 경쟁을 여러 이슈에서 여러 단위로 조직해서 제도화하는 역할을 한다. 여러 방법 중에서 정당이 현실적인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이라고 본다. 세계화를 통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 정당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당장 대선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이들의 발언들을 보라. 내가 대통령이 되고 정부의 수장, 정치의 리더가 될 때 나는 우리사회 문제를 이렇게 하겠다는 확실한 얘기를 들을 수 없다. 우리 지도자들은 자기 말을 하지 않아 확신을 할 수 없다. 이를 뒷받침할 정당도 없다.

대안국가 모델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한 것은 없는데, 정당체제가 폭넓은 경쟁구조를 가질 때 부수적으로 만들 수 있는 효과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사회윤리적인 내용들이 피폐화되면서 우리사회 여러 갈등들이 출구를 못찾아 나타나는 부정적 효과가 심각하다. 사회적으로 성장 일변도가 아닌, 복지와 평등의 가치가 보다 더 진전되는 방향으로 경제 민주화가 실현되는 것이 우리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정리 권혁철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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