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0일 오후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오른쪽 환경위기시계가 오후 9시 47분을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처음 선언하고 12월10일 국민들에게 직접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한 지 곧 1년이 된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치를 기록한 배출정점에서부터 탄소중립 목표시점까지 주어진 시간은 유럽연합 60년, 미국 43년, 일본 37년이다. 이들보다 5~28년 늦게 배출정점(2018년)에 도달한 한국에 주어진 시간은 32년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갈 길이 그만큼 바쁘다. 탄소중립 선언 1년 한국은 얼마나 왔을까?
탄소중립 선언에 따른 변화는 주로 제도적 형식적 측면에서 빠르게 이뤄진 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두 달 만인 지난해 12월7일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추진전략에서 정부는 에너지 전환 가속화, 순환경제 활성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탄소중립을 이끌 컨트롤타워로는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해 탄소중립 정책을 심의·의결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역할까지 맡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설립된 탄소중립위원회는 출범 다섯달에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하는 나침반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실현 가능성과 석탄발전 중단 여부를 둘러싼 논란 끝에 탄중위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확정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을 전면 중단하는 경로와 화력발전을 일부 남겨 놓는 대신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적극 활용해 제거하는 경로다. 탄중위는 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의결했다. 한국의 기존 2030년 엔디시는 2017년 배출량 대비 24.4% 감축으로, 2018년 배출량 기준 26.3% 감축에 해당한다. 새 엔디시는 지난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전세계에 공표됐다.
이에 앞서 9월에는 2050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 제정으로 한국은 영국, 독일,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 중립을 법제화한 나라가 됐다. 정부가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탄소중립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방안이라고 밝힌 기후대응기금도 내년 2조5천억원 규모로 출발한다. 이 가운데 70%가량은 기존 사업을 간판만 바꿔 단 것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일단 첫발은 뗀 셈이다. 환경부가 탄소중립 쪽으로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 중인 녹색분류체계도 확정을 앞두고 있다. 녹색경제활동 범주에 원자력은 빠지고 엘엔지(LNG)는 들어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제도적 측면의 빠른 변화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실효적·실질적 변화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변화를 관찰하기에 1년은 너무 짧을 수 있지만 탄소중립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탄소중립 전략에서 밝힌 대로 탄소중립을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에너지의 주공급원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다. 탄중위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2050년 탄소중립에 도달하려면 지난해 약 37.1테라와트시(TWh)를 기록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20~24배인 736~889.8TWh까지 늘어야 한다. 이것은 지난해 1만8968메가와트(㎿)인 태양광과 풍력 발전설비량이 매년 대형 원전(1400㎿)이 10기 이상 추가되는 수준으로 빠르게 늘어나야 가능하다. 하지만 설비 확충은 더디다. 올해 들어 상반기까지 확충된 태양광·풍력설비는 2289㎿로 원전 2기 분량도 안 된다. 특히 풍력발전 설비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엔 162㎿가 늘었으나, 올해 같은 기간엔 25㎿ 추가된 데 그쳤다. 복잡한 사업심사 절차에다 반대하는 주민 민원이 많아 갈수록 설비 확충에 어려움이 더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전기와 같은 에너지 사용에 적절한 가격을 매겨 효율적 소비를 유도하며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투자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탄소중립 추진전략에서 밝힌 탄소의 가격 신호를 강화하는 방안과도 연결된다.
현재 한국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2017년에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OECD 평균요금 대비 75%였던 주거용 요금 수준은 2019년에는 70%로 오히려 떨어졌다. 산업용 요금 수준도 같은 기간 98%에서 92%로 떨어졌다. 정부가 2013년 이후 요금을 동결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해부터 발전 연료비 등락에 따라 요금을 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기대를 모았다. 연동제는 에너지 전문가들이 에너지 전환을 위한 가격 정상화의 첫 단추로 꼽는 제도다. 이에 따라 첫 요금 인상은 올 2분기에 이뤄져야 했지만 3분기까지 건너뛰어 4분기에야 처음 이뤄졌다. 정부가 물가 영향 등을 이유로 적용을 막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내건 정부조차 구호와 실천 사이의 거리를 제대로 좁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이해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를 생산·보급하는데 따르는 작은 불편은 참아주고, 에너지 전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전기요금 인상 등을 수용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탄소중립사회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를 탄소중립 추진전략의 10대 과제의 하나로 설정한 이유다.
하지만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 1년 사이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보고는 없다. 특히 2018년 기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36%를 배출하고 있는 산업 부문의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은 우려스런 상태에 머물고 있다. 산업계 일부에서는 이미 국제사회에 공표된 엔디시를 되돌릴 수 없는데도 탄소중립 속도 조절론을 계속 제기하고, 야권의 대선 후보는 산업계 부담을 이유로 사실상 엔디시를 재검토하겠다고 발언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6일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021 탄소중립 주간 개막식’에서 “거대한 흐름에서 어떻게 우리만 예외가 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한 것은 이처럼 탄소중립에 부정적인 움직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같은날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탄소중립 관련 중소기업 실태조사'에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알고 있는 기업이 48.6%로 나온 것은 국민 참여에 선행해야 하는 홍보 노력부터 부족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청년층 사이 탄소중립을 위한 적극적 행동은 뚜렷이 도드라지는 형세고, 2030년, 2050년까지의 길목에서 주요한 당사자로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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