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봄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양봉농가 곳곳에서 꿀벌이 집단 실종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 관계당국이 정확한 원인 파악에 나섰는데 현재로서는 이상기후와 해충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농림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지자체, 한국양봉협회는 지난 1월7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전국 9개 도 34개 시·군의 양봉 농가 99개의 꿀벌 실종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국 곳곳의 양봉 농가에서 꿀벌이 단체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봄이 일찍 오는 남쪽 지역(전남·경남·제주)의 피해가 다른 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다. 한국양봉협회가 전국의 회원 농가를 대상으로 집계한 피해 건수를 보면, 이달 초 기준 전국 4173개 양봉 농가의 39만517개 벌통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농진청에 따르면 월동에 들어갈 무렵 벌통 안에 사는 꿀벌의 개체수는 대략 1만5000마리 정도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전국에서 약 60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진 셈이다.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진 정확한 이유는 아직 판명되지 않고 있다. 농진청은 이상기후와 해충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14일 밝혔다.
우선 기생성 해충인 응애류는 장마가 지난 뒤 8~9월에 최대로 번식한다. 지난해 이 기간 농가에서 응애류 발생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거나 로열젤리와 사양꿀 생산 등을 이유로 적기에 방제를 못 했을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응애류가 급증함에 따라 일벌이 정상적으로 양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이밖에도 검은 말벌 등 일벌 포획력이 탁월한 종을 완전히 방제하지 못한 점, 몇몇 농가에서 뒤늦게 응애 방제를 하기 위해 예년의 3배 이상에 달하는 과도한 양의 살충제를 사용한 점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가을철 저온과 겨울철 고온현상 같은 이상기후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먼저 지난해 9~10월 저온현상이 발생해 일벌들의 발육이 원활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젊은 일벌들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8월 이전 태어난 상대적으로 늙은 일벌들이 주로 월동에 들어갔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1~12월 고온현상으로 꽃이 이른 시기 개화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월동 중이던 늙은 일벌들은 꽃이 일찍 피자 평소보다 빠르게 벌통 밖으로 나가 화분 채집과 같은 외부 활동을 시작했고, 이에 체력이 소진되고 외부 기온이 다시 낮아지면서 벌통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농진청 양봉생태과 담당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기후변화와 해충”이라며 “특히 지난해 겨울에는 이례적으로 기온이 높아서 개화가 빨랐다. 평소 같으면 봄철 월동벌이 깨어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께 충청권의 한 양봉 농가에서 촬영된 텅 빈 벌통 사진. 한국양봉협회 제공
양봉 농가의 비극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전염병이 돌면서 국내 토종벌이 집단 폐사한 바 있는데, 이후 10여년 만에 재현됐다.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 유충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 질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봄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해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쪽 자료를 보면, 이 병으로 2010년 기준 국내에서 65~99%의 토종벌이 폐사했다.
2006년 미국서도 집단 실종, 2010년 한국 토종벌 떼죽음도
꿀벌의 집단 실종 사태는 해외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미국에서는 2006년 처음으로 이러한 현상이 보고됐고,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응애류 등 해충, 농약, 이동식 양봉에 따른 꿀벌 스트레스 증가, 이스라엘 급성 마비 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병원균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 이외에도 태양의 흑점 활동으로 자기장의 혼란이 발생해 꿀벌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벌통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아침 기온이 15도 이상으로 오르면 꿀벌은 비행을 하기 시작한다. 남쪽 지역부터 3~4월이면 월동을 마친 벌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올해는 꿀벌이 사라지고 텅 빈 벌통이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살충제 경우에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 살충제가 꿀벌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 1월 유럽연합(EU) 식품안정청(EFSA)은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 사용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농업에 큰 타격을 준 꿀벌 폐사의 주요 원인이며, 꿀벌에 매우 독성이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인간이 사용하는 화학약품으로 인해 꿀벌의 신체 면역체계가 붕괴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거나 질병에 취약하게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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