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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몽골 가축 떼죽음 부르는 ‘조드’…유목민, 기후난민이 되다

등록 2022-11-17 06:00수정 2022-11-17 16:02

[제27차 유엔기후변화총회]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몽골 현장
1999년 ‘조드’로 가축 300마리를 잃은 바트바타르(52)가 지난달 27일 몽골 울란바토르 낮은 산지 언덕에 있는 게르 앞에 서 있다. 올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1999년 ‘조드’로 가축 300마리를 잃은 바트바타르(52)가 지난달 27일 몽골 울란바토르 낮은 산지 언덕에 있는 게르 앞에 서 있다. 올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올해 4월 낸 ‘지구토지전망’ 보고서에서 인간 활동으로 지표면의 20~40%가 황폐해졌다며, 각국 지도자들이 토지 복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기후위기 대응 비정부기구(NGO)인 ‘푸른아시아’는 나무 심기와 토지 복원, 사막화 방지 등이 국제 이슈로 떠오르기 전부터 몽골에서 생태림 조성을 해왔다. 이런 노력을 인정 받아 2014년 유엔사막화방지협약의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이 조성하고 있는 조림지를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둘러봤다. 편집자 주

“‘조드’로 키우던 가축 200마리가 다 죽었습니다.”

몽골어로 ‘재앙’을 뜻하는 조드라는 단어가 나오자, 주민들이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350㎞ 떨어진 아르항가이 아이막의 어기노르 솜의 한 게르(몽골의 전통 텐트)에서다. 몽골은 21개 주(아이막), 329개 군(솜)으로 구성된다. 낯을 가리며 쉽게 입을 떼지 않던 주민 스무명이 ‘조드로 피해를 본 것이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모두 인상을 쓰며 수군거렸다.

조용히 앉아있던 마을 주민 아마르툽신(46)는 손을 들고 말을 시작했다. “2012년 말, 염소가 풀을 먹지 못했어요. 그때 200마리가 아사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주민 앵흐투르(49)도 “그해 겨울, 1m 넘는 높이로 이틀 동안 눈이 내렸고, 영하 30~40도 추위가 이어졌다”며 “양과 말, 염소 150마리를 잃었다”고 말을 보탰다. 타이반(45) ‘페이퍼리스 생태림’ 주민팀장은 게르에 모인 스무명 중 한두 명 빼고는 조드의 피해자들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3월 20일 몽골 서부 오브스 아이막에서 한 목동이 눈 위에 쌓여 있는 가축 사체를 보고 있다. 여름 가뭄에 이어 겨울 폭설이 쏟아지면서 목초지와 초원이 파괴된 몽골에서 ‘조드’라고 불리는 자연재해로 수십만 마리의 가축들이 죽었다. 오브스/EPA 연합뉴스
2016년 3월 20일 몽골 서부 오브스 아이막에서 한 목동이 눈 위에 쌓여 있는 가축 사체를 보고 있다. 여름 가뭄에 이어 겨울 폭설이 쏟아지면서 목초지와 초원이 파괴된 몽골에서 ‘조드’라고 불리는 자연재해로 수십만 마리의 가축들이 죽었다. 오브스/EPA 연합뉴스

몽골에서 조드는 특히 심각한 가축 폐사를 유발하는 기상이변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대재앙’으로 알려진 2009~2010년 조드는 몽골 전체 가축의 17%인 800만마리의 목숨을 앗아갔다. 보통 조드는 8∼9년에 한 번씩 발생했지만, 2015∼16년과 2016∼17년에는 2년 연속 찾아오는 등 최근 들어 간격이 짧아지는 추세다. 한국 기상청의 ‘개발도상국 기상기후업무 지원사업 최종보고서(2020년 12월∙㈜웨더피아 작성)’를 보면, “조드는 단순히 한파뿐만 아니라 사막화를 일으켜 몽골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며, 기후변화가 심화함에 따라 발생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난민들과 서민들이 모여 사는 몽골 수도 올란바토르 낮은 산지 언덕에 있는 게르촌. 올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환경난민들과 서민들이 모여 사는 몽골 수도 올란바토르 낮은 산지 언덕에 있는 게르촌. 올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기후변화로 심각해진 사막화도 유목민을 환경난민으로 내모는 원인이다. 몽골은 1990년대 전 국토의 40%가량이 사막지대였는데, 2020년 사막화 비율은 76.9%(몽골 자연환경관광부 발표)까지 늘었다. 지난 112년간(1901~2012년) 지구의 평균기온은 0.89도 상승(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5차 보고서)했지만, 몽골은 1940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기온이 2.24도 상승했다. 몽골 국립대와 중국 등 국제연구팀은 지난해 2월 논문에서 1975~2015년 사이 몽골 초원의 연평균 기온은 1.73도 상승하고 연간 강수량은 5.2%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7일 몽골 아르항가이 아이막 어기노르 솜의 ‘페이퍼리스 생태림'을 조성하는 주민들이 몽골의 전통 텐트인 게르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기노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지난달 27일 몽골 아르항가이 아이막 어기노르 솜의 ‘페이퍼리스 생태림'을 조성하는 주민들이 몽골의 전통 텐트인 게르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기노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조드와 사막화로 가축을 키울 수 없는 유목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로 몰려들면서 울란바토르 낮은 산지와 언덕에 주로 환경난민들이 모여 사는 게르촌이 형성됐다. 환경난민은 눈에 띄는 환경적 변화로 삶의 질이 심각하게 훼손됐을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험해지면서 전통적으로 살아온 장소를 강제로 떠나게 된 이들을 의미한다.

2016년 3월 21일 몽골 서부 오브스 아이막에서 한 목동이 눈 속에 가축 사체를 버리고 있다. 여름 가뭄에 이어 겨울 폭설이 쏟아지면서 목초지와 초원이 파괴된 몽골에서 조드라고 불리는 자연재해로 수십만 마리의 가축들이 죽었다. 오브스/EPA 연합뉴스
2016년 3월 21일 몽골 서부 오브스 아이막에서 한 목동이 눈 속에 가축 사체를 버리고 있다. 여름 가뭄에 이어 겨울 폭설이 쏟아지면서 목초지와 초원이 파괴된 몽골에서 조드라고 불리는 자연재해로 수십만 마리의 가축들이 죽었다. 오브스/EPA 연합뉴스

몽골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1년말 기준 울란바토르 인구는 약 164만명으로 인구(341만명)의 절반에 달한다. 울란바토르에 사는 사람 중 22%가 게르촌에 산다. 이 게르촌에서 만난 바트바타르(52)는 “900㎞ 떨어진 고비알타이 아이막에서 가축 600마리를 키우다 1999년~2000년 조드 때 300마리를 잃고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해결사로 떠오른 ‘나무’…“심기만 하고 방치해선 안돼”

나무는 이집트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기후위기 문제의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지난 7일 총회에서 중동 지역에 나무 500억 그루를 심어 녹지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9일에는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은 10억 그루 나무 심기 계획에 관해 설명했다. 한국을 포함한 26개국은 지난 7일 2030년까지 산림 손실과 토지 황폐화를 멈추고 훼손된 자연을 되돌리기 위한 ‘산림과 기후 지도자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튿날에는 몽골을 포함한 5개 나라가 유럽연합과 산림 보호, 토지 복원 내용을 담은 ‘산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몽골 투브 아이막 바양척드 솜의 조림지에서 양묘를 하는 한 주민. 몽골 수도 올란바토르에서 아르항가이 아이막 어기노르 솜 ‘페어피리스 생태림' 가는 길목에 푸른아시아의 9번째 조림지인 바양척드 조림지가 있다. 푸른아시아 제공
몽골 투브 아이막 바양척드 솜의 조림지에서 양묘를 하는 한 주민. 몽골 수도 올란바토르에서 아르항가이 아이막 어기노르 솜 ‘페어피리스 생태림' 가는 길목에 푸른아시아의 9번째 조림지인 바양척드 조림지가 있다. 푸른아시아 제공

기후위기 대응 비정부기구(NGO)인 푸른아시아의 생태림 조성 사업은 사막화 방지뿐 아니라 환경난민들의 일자리 마련과 지역사회 정착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기존의 나무만 심고 관리를 하지 않는 사업모델과 차별점을 가질 수 있었다. 2012년 모든 가축을 잃은 아마르툽신과 주민들은 2015년 시작한 생태림 조성 사업에 참여하면서 일거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환경난민이 될 뻔했던 주민들이 50㏊에 나무 7만그루를 심고 비닐하우스에서 농작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일하는 ‘페이퍼리스 생태림’은 비씨(BC)카드가 편의점(시유, 세븐일레븐)에서 영수증을 받지 않으면서 아낀 비용 중 일부를 지원한 금액으로 운영된다. 이규호 푸른아시아 차장은 “특히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어기노르 지역을 녹지로 바꿔 보자는 계획에서 생태림을 조성했다”고 했다.

몽골 아르항가이 아이막 어기노르 솜 ‘페이퍼리스 생태림’ 식재목. 푸른아시아 제공
몽골 아르항가이 아이막 어기노르 솜 ‘페이퍼리스 생태림’ 식재목. 푸른아시아 제공

푸른아시아는 2000년부터 이런 조림지를 조성하기 시작해 현재 8개(바양노르, 에르덴, 돈드고비, 다신칠링, 어기노르, 아르갈란트, 올란바토르, 바양척드) 생태림을 관리하고 있다. 바가노르 생태림은 몽골 지자체에 넘겼다. 푸른아시아는 지금까지 790ha(여의도 면적 290ha의 2.7배)에 유실수인 차차르간(비타민나무), 비술나무 등 88만그루를 심었다. 지역주민들을 현지 직원으로 채용해 생태림의 사후 관리에 신경 쓴다. 나무만 심어놓고 관리를 하지 않아 숲 조성에 실패하고 도리어 환경에 손해를 끼친 사례를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몽골 정부는 현재 10억그루 심기 운동을 펼치면서 사막화와 싸우는 중이다. 앞서 후렐수흐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제76차 유엔총회에서 ‘사막화를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조림 사업’이라며 2030년까지 전체 10억그루를 심는 캠페인을 발표했다. 사막화 토지 비중을 4% 감축하고, 산림지역 국토 비중을 7.9%에서 9%까지 올린다는 계획이다.

나무 심기로 기후변화와 싸우는 몽골

그뒤 몽골 정부는 지자체와 기업에 나무 심기를 할당했다. 수도인 울란바토르 1억2천만그루, 어기노르 솜이 속한 아르항가이 아이막은 2천만그루를 심어야 한다. 우르차이흐 어기로느 솜장은 “어기로느 솜은 70만그루를 할당받았다. 어떻게 심을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예산을 따로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르차이흐 솜장이 아르항가이 아이막에서 가장 큰 녹지인 ‘페이퍼리스 생태림’에 관심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어기노르 조림지에서 7만여그루를 심으면서 녹지 확보에 기여하고 있고, 우리에게 묘목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몽골 정부가 10억그루 심기 운동을 펼치면서 푸른아시아에 지원을 요구하는 몽골 지방정부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푸른아시아의 관리와 지원금 없이 현재 8개 조림지 주민들이 자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숲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존 조림지가 자립하지 못하면 다른 사막화 지역에 생태림을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페이퍼리스 생태림’만 하더라도 묘목구매비, 조림비, 인건비 등은 기업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타이반 주민팀장은 ‘지원이 없어도 운영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한승재 푸른아시아 실장은 “바양노르 사업장은 지원금도 거의 받지 않을 정도로 자립했다”며 “다른 사업장들도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이 기사는 푸른아시아에서 취재비용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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