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구제법’ ‘장외영향평가제’
박대통령 대선공약이나 시행 불투명
박대통령 대선공약이나 시행 불투명
유해 화학물질 누출 사고 등을 일으킨 기업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고 피해자의 권리를 확대하려는 ‘환경오염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안’(이하 환구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환경오염 가해자한테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의 핵심 내용을 정부와 법사위 여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의원 입법으로 추진된 환구법의 애초 원안은 시멘트 분진 피해, 공단 주변 호흡기 질환 피해 등 수년 또는 수십년간 축적돼 발생된 환경오염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정’을 인정하고, 해당기업이 환경오염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피해 유무를 입증하는 주체를 기업에서 피해 주민으로 변경하는 단서조항을 공청회나 국회 보고도 없이 덧붙여 환경노동위원회에 올렸다. 이런 단서조항은 환경오염 피해자 구제와 환경보호를 위해 ‘인과관계 추정’을 적용해 기업에 책임을 물어온 기존의 법원 판례조차 무력화하는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환노위의 여야 의원들이 지난달 23일 단서조항을 빼고 수정 의결해 법사위에 넘겼다. 하지만 이 법안은 주무 부처인 환경부마저 정부부처 사이에 협의가 되지 않았다며 물러서 국회 통과를 기약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환경오염 구제법 제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환경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내놓은 대선 공약이다.
이른바 규제완화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유해 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겠다며 내놓은 약속이 미뤄지거나 애초 취지에서 변질된 게 이것만은 아니다. 산업시설 설치 때부터 사업장 바깥에 끼치는 악영향을 평가해 대책을 세우도록 해 구미 불산 누출과 같은 화학 사고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겠다며 내놓은 또다른 대선 공약인 ‘장외영향평가제’도 제대로 시행될 기약이 없다.
국회가 구미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화학사고에 대한 처벌을 크게 강화하는 내용으로 통과시킨 화학물질관리법도 입법 취지가 퇴색됐다. 환경부가 처벌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으로 하위 법령 제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치명적 사고를 내면 회사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덜게 됐으나, 화학업체들이 덜게 된 만큼의 불안감은 다시 국민들이 떠안게 됐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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