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지난 13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진행되고 있다.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지속 적용되면서 이번달 열린편집위원회 회의는 화상으로 이뤄졌다. 줌 화면 갈무리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수도 카불 점령 속도, 아프가니스탄의 불투명한 미래, 지정학적인 역학 구도의 변화 등 수많은 이슈가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지난 13일 오후 4시 온라인으로 진행된 9기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서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재장악 보도 등 <한겨레>의 국제뉴스를 집중 점검했다. 김민정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경미 위원(섀도우캐비닛 대표), 김보림 위원(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김준범 위원(한라홀딩스 부사장), 홍윤희 위원(장애인 이동권 콘텐츠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황세원 위원(일in연구소 대표)이 참여했다. 한겨레에서는 권태호 저널리즘책무실장과 정은주 콘텐츠총괄, 정환봉 소통데스크가 함께했다.
김민정 지난달 15일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이후 관련 뉴스가 세계적인 이슈였다. 한겨레의 아프가니스탄 관련 보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황세원 정의길 국제뉴스팀 기자가 해설 기사를 여러번 썼다. 이렇게 전문성 있는 기자가 있다는 것은 한겨레의 큰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유네스코 아프가니스탄 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했던
송첫눈송이씨의 연속 기고도 좋았다. 국제뉴스의 경우 직접 취재가 힘들어 워싱턴 특파원 취재와 외신을 종합해서 보도하는 한계가 있다는 점은 잘 안다. 그래도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송첫눈송이씨의 기고에 현지 인물의 탈출 과정이 담겨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번 일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거나 혹은 누군가가 죽음의 위기에 놓일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다.
반면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는 민족 자립이냐 미국의 개입이냐를 주요 쟁점으로 보고 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필요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성 억압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들이 부르카를 다시 쓰고 다닌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어떻게 여성 억압을 강화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진단이나 분석 기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나 그 나라의 관습이기 때문에 논쟁을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 부분이 아쉬웠다.
김민정 한겨레가 준비된 모습을 보여줬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달 15일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고 그다음날 바로 1면에 관련 기사를 싣고, 4면에
‘미군과 맞붙어 패주했다 재집권…더 강해진 탈레반의 귀환’이라는 상세한 해설 기사를 내보냈다. 탈레반 지도자인 무하마드 오마르가 1994년 민병대를 결성한 뒤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정보 가치가 굉장히 높은 기사였다. 그다음날(8월17일)에도
‘미, 탈레반 얕보다 쫓기듯 철수…상황 오판 바이든 체면 구겨’ 기사에 ‘숫자로 본 아프간 전쟁’이라는 인포그래픽이 들어갔는데, 이 내용도 많은 참조가 됐다. 사건 초반에 상세한 분석 기사들이 바로 나오는 것이 인상 깊었다.
또 지금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심정이고 어떤 일을 겪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었던 송첫눈송이씨의 기고 역시 좋았다. 국제기구 직원으로 현지에 있으면서 느꼈던 국제 원조의 문제의식도 잘 담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기고였다. 다만 인터넷에서 관련 연재가 한 묶음으로 묶여 있지가 않아서 나중에 다시 찾아서 읽기가 힘들었다. 한가지 추가로 말하자면 외신 보도의 균형을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중동 취재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우니 많은 국내 언론이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언론을 많이 인용했다. 알자지라나 아프가니스탄 현지 언론 인용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외신 중에서도 서구 언론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첫 외국인 대규모 출국을 돕기 위해 9월9일(현지시각) 카불 공항에 도착한 카타르 민간 항공기 앞에 보안요원 한 명이 서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김경미 현지인들을 직접 접촉해서 보도하는 사례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겨레가 알자지라를 인용해 아프가니스탄에 남겠다고 밝힌 인권 활동가
나디마 사하르의 인터뷰를 보도한 적이 있다. 기사를 본 뒤 페이스북을 찾아보니까 바로 그의 계정이 나왔다. 알자지라 인용 보도 대신 페이스북으로 직접 인터뷰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부 역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한 주체였다. 20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했는데, 이번 사건을 너무 관전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파병 반대 활동을 했는데, 파병 20년의 결과가 이렇게 된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 정부가 파병을 통한 타국의 군사 개입 문제에 대해 리뷰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한겨레 보도에 그런 관점이 빠져 있어서 아쉬웠다. 앞으로 유사한 파병 요청을 다시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복습이 필요하다. 이런 주제로 공론장에서 논의를 해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홍윤희 올해가 9·11 20주기인데 관련 보도가 적어서 아쉬웠다. 9·11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많은 것을 바꾼 사건이다. 특히 이번에는 아프가니스탄 사태까지 있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포함한 큰 맥락의 기사가 나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11 테러 당시 구조에 나선 소방관과 경찰관들에게 가게를 털어 물과 맥주, 식품을 제공했던
한인 식품점 대표를 인터뷰한 기사는 좋았다.
김준범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탄압했던 역사적 맥락이 있다고 해도 이것이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은 계속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정말 그렇게 될 것인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꾸준히 후속 기사를 써주면 좋겠다. 국제사회가 관심을 잃지 않아야 탈레반 역시 압력을 받을 것이다.
김민정 저 역시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과 관련한 기사가 없어서 아쉬웠다. 관련한 해설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을 위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이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탈레반이 달라지겠다고는 하지만 대학의 남녀 교실 분리 등 걱정스러운 상황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시위를 한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지속해서 후속 보도를 해주면 좋겠다. 한겨레가 사설 등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에게 인도적 대우를 하는 것이 마땅하고 한국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로 입국시킨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한겨레 칼럼 필진인 황필규 변호사가 지난 10일
‘어떤 나라가 난민을 맞이하는 법’이라는 칼럼에서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특별기여자라는 애매한 카테고리로 받아들였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한겨레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관련 보도가 없었다.
김경미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를 특별기여자로 받아들인 것은 행정적으로 보면 잘했다고도 할 수 있다. 대규모 인원을 비밀리에 들여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 한국 사회에서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을 아니까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제대로 정착할 수 있도록 여론이 잘 형성되면 좋겠다.
김민정 다른 기사나 주제에 관해서도 토론해보자.
황세원 ‘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기획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용이 모두 좋다. 보도를 보고 아내 살인이 친족 살인으로 뭉뚱그려져 별도 데이터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여성 건설노동자가 20만명이 넘는데,
안전장비는 남성용뿐이라는 기사도 인상 깊었다. 이 기사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손질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해법까지 제시해서 좋았다.
‘위기의 소방구급대원’ 시리즈는 공감이 되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내용이 없이 끝나서 아쉬웠다. 대안을 마련할 단초라도 제공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윤희 도쿄패럴림픽 보도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럴림픽에 40~50대 선수의 출전이 많은 이유가 장애 학생이 체육을 학교에서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다른 언론사의 보도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한겨레에서도 패럴림픽에 얽혀 있는 이런 맥락을 더 많이 보도해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김보림 기후위기 보도 관련해서는 좋았던 점도 있었고 아쉬웠던 점도 많았다. 이번달에는 기후 관련 이슈가 생각보다 많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통과 등과 관련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기후변화팀이 이런 정책 결정 과정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필요한 내용을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의 인터뷰도 깊이 있게 이루어져 실제 정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언론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이 인터뷰에 많이 담겼다.
하지만 한겨레 차원에서 기후위기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좋은 기사가 많이 있었는데 지면에는 일부만 다뤘다. 지금 정부에서 제시하는 정책에 대한 한겨레의 명확한 관점이 없다 보니 소극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어렵다는 점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관련한 일부 기사에서는 수치가 너무 많이 제공되어 전문성이 없는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독자들의 판단을 도울 수 있도록 맥락을 담은 기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기후 문제를 산업경제 측면에서 바라본 기사들은 긍정적이었다. 최근 수소 열풍에 대한 기사가 여러 언론에서 나왔는데, 한겨레는
‘한국의 수소 열풍, 기회인가 거품인가’ 기사를 통해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김준범 한겨레 경제·산업 기사는 칭찬하고 싶다. 다른 신문에 비해 양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읽을 때마다 감탄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수소경제 기사도 그렇고, 이재연 기자가 쓴
구글 인앱 결제 방지법 관련 비판 기사도 좋았다. 카카오의 무분별한 확장 문제도 여러 언론이 다루고 있지만, 한겨레는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깊이 있게 분석해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기자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주 아프가니스탄 보도 관련해서는 굉장히 뛰어난 선임기자가 중심을 잡아 준 것이 큰 힘이 됐다. 그 과정에서 꼭 다뤄야 하지만 놓친 쟁점을 송첫눈송이씨의 기고로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기여자 문제를 다루지 못했던 것은 반성하게 된다. 난민 문제는 한겨레가 잘 다룰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한데, 이번 사건과 적극적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한겨레 기후변화팀은 전문성이 무척 높은 기자들로 구성돼 있다. 그것이 자칫하면 불친절함이 될 수도 있는데, 더 친절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환봉 소통데스크
bonge@hani.co.kr, 녹취 설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