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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중립적이었다고?

등록 2014-08-20 13:58수정 2014-08-21 14:29

20일치 조선일보 5면 갈무리.
조선일보, 세개면에 교황 귀국 기사 실으며 ‘아전인수’ 해석
“고통 앞에 중립 없다” 발언 뺀 채 “누구 편도 안 들어” 주장
1면에선 ‘교황, 박 대통령 스페인어 실력 거듭 칭찬’ 보도도
‘교황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20일치 <조선일보> 5면 머릿기사 큰 제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 기간 동안 보여준 사회적 메시지는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무한 경쟁 사조에 맞서라’는 교황의 주문은 신자유주의라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제 모델에 맞서 저항하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해석은 달랐다. 이 신문은 20일치 지면에서 ‘교황은 중립을 지켰다’고 보도했다.

조선은 이날 1면과 4·5면을 할애해 교황의 출국 소식을 전했다.

5면에서 교황의 방한을 결산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의 제목은 “교황의 중재 리더십…모두의 말 들었지만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였다. 기사는 교황이 세월호부터 제주 해군기지, 쌍용차, 위안부 문제까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교황은 방한 이전부터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사제들과 국제 사회에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이번 방한 때도 각종 강론 등을 통해 “물질주의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바란다”, “부자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 안주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어 달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조선일보는 ‘정의구현사제단’도 걸고 넘어졌다. 교황의 중립적인 태도가 “각종 국내 현안에서 갈등의 당사자가 된 정의구현사제단과는 확연히 다른 언행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그동안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 “‘종북 구현 사제단’으로 불릴 수도 있다”고 해왔는데, 이번에 또 매도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4면에서 교황의 전세기 인터뷰를 상세하게 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세월호 유족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교황의 답변을 전하면서 ‘누군가 노란 리본 떼라 했지만 나는 정치인이 아닌 성직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했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이 기사를 보면, “나는 (정치인이 아닌) 성직자”라고 되어 있다. 교황이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발언하지 않았는데도 자의적으로 제목을 달았다. 또 이 기사에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는 교황의 발언은 뺐다. 거의 모든 매체들이 교황의 이 발언을 중요하게 다룬 것과 대비된다.

또 조선일보는 1면의 “침략으로 끌려가 노예생활 했지만 위안부들, 결코 품위 잃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말미에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의 스페인어 실력을 거듭 칭찬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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