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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농촌 환경재앙 막지 못한 ‘행정 책임’ 교훈 삼았으면 해요”

등록 2021-12-02 20:21수정 2021-12-03 02:31

[짬] 익산 좋은정치시민넷 손문선 대표

전북 익산 지역활동가인 손문선 좋은정치시민넷 대표가 지난 11월 30일 자신이 집필한 책 <장점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손문선 대표 제공
전북 익산 지역활동가인 손문선 좋은정치시민넷 대표가 지난 11월 30일 자신이 집필한 책 <장점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손문선 대표 제공

“이 책은 익산 장점마을 환경재앙 사건에 대한 기록서입니다. 책을 보면 주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는지, 환경피해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위해 어떻게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의 환경오염 피해사건 원인규명 활동을 담은 <장점마을: 탐욕이 부른 환경참사>가 출간됐다. 저자 손문선(54) 좋은정치시민넷 대표는 지난달 30일 전화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의 인식도 바꾸고, 허술한 법체계도 개정해 장점마을과 같은 환경참사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비료공장 발암물질 피해 규명활동 기록
‘장점마을:탐욕이 부른 환경참사’ 출간

16년간 주민 99명중 14명 암으로 사망
주민·전문가·행정가·정치인·언론인
‘환경비상대책민관협의회’ 발빠른 대응
‘농촌 주민들의 권리찾기 교과서’ 평가

2018년 11월8일 전주 전북도청에서 열린 장점마을 민관협의회의 기자회견에서 손문선(맨오른쪽) 대표가 비료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 등을 설명하며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박임근 기자
2018년 11월8일 전주 전북도청에서 열린 장점마을 민관협의회의 기자회견에서 손문선(맨오른쪽) 대표가 비료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 등을 설명하며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박임근 기자

앞서 2019년 11월14일 환경부는 ‘장점마을 인근 비료공장과 주민의 암 발생 사이 역학적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불법으로 사용한 원료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에서 발생한 담배특이 니트로사민(TSNAs) 등 발암물질이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비특이성 질환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정한 국내 첫 사례였다.

문제의 비료공장은 2001년 10월 문을 열었다. 이후 2017년 말까지 주민 99명 가운데 22명이 암에 걸렸고 14명이 숨졌다. 주민들은 2017년 4월 인근 비료공장과 관련한 건강영향 조사를 청원했고, 그해 7월 환경보건위원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조사가 이뤄졌다.

손 대표는 “2017년 2월 지역 일간지에서 ‘시골 마을을 덮친 암 공포’라는 제목의 기사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역의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환경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사람으로서 도저히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며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민관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익산참여연대 사무처장, 익산시의원(3선), 익산시 악취대책민관협의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는 문제 해결의 구심점이 됐던 ‘비상 민관협의회’의 활동을 강조했다. 2017년 2월 주민·전문가·행정가·정치인·언론인 등 10여명으로 꾸려진 협의회 위원들은 각자 할 일을 분담했고, 그는 집회 등에서 진행을 맡고 성명서·기자회견문을 작성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주민들 사이에서 ‘장점마을 플랫폼’이라고 불린 이유다.

“가장 큰 고비는 2019년 6월 환경부의 주민설명회였습니다. 비료공장의 배출물이 주민 건강에 영향으로 준 것으로 보이지만, 과학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태여서 환경·인체 노출량 파악이 곤란했고, 발암 위해도가 관련 규정에서 정한 범위를 초과하지 않았으며, 아주 적은 인구에 대한 조사라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발 빠르게 움직여 역학적 관련성이 있음을 최종보고서에 넣도록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조직위원장은 “만약 민관협의회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서 집단 암발병 의혹이 일었던 전북 남원 내기마을처럼 인과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그쳤을 것이다. 주민들의 민원을 잠재우는 면피용이 됐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쓰레기 소각시설과 가축분뇨 처리시설 등으로 위협받는 농촌 주민들의 권리찾기 교과서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손 대표는 “장점마을 사건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려고 했던 비료공장의 불법행위, 행정의 무사안일과 관리·감독 부재, 주민건강보다 산업을 우선하는 환경법률의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주민들이 끊임없이 행정기관에 민원을 넣었고, 시청 누리집·전화·집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호소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공무원들은 나서지 않았고, 결국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농촌은 대부분 고령화했습니다. 질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어도 호소하거나 싸울 여력이 없습니다. 또 질병이 발생해도 원인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농촌지역 환경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장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공장입주 제한, 철저한 환경조사 등 정부와 공무원들의 책임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는 뒤늦게 펴내다보니 아쉬움도 많다고 했다. 책을 출간할 계획을 미리 세웠다면 사건일지 말고도 당시에 느꼈던 생각이나 감정도 남겨놓고, 풍부한 주민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더 자세히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손 대표는 오는 7일 오후 6시 익산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서 열리는 <장점마을> 출판기념회와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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