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과 ‘저출산’, 어떻게 다른가요
정부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일하는 부부의 육아기 단축근로와 아이돌봄을 확대하고, 주택자금 대출 문턱을 낮추는 등 대책을 내놨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약 1년 만에 나온 범정부 차원의 저출산(저출생)·고령사회 대책이지만 이전 정부 대책과 별다른 차별점이 없고, 전문 인력과 충분한 예산이 투입되지 않아 실질 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 직속 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위원장 대통령) 2023년 첫 회의를 주재하고 “(저출산 문제에) 지난 15년간 종합계획을 만들고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은 역대 최저인 0.78명을 기록했다”며 “정부는 돌봄과 교육, 유연근무와 육아휴직의 정착, 주거 안정, 양육비 부담의 완화, 난임부부 지원 확대와 같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지원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해나가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저고위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하고 확실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회의는 7년여 만에 대통령이 직접 주재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날 저고위가 내놓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 방안’을 보면, 우선 일과 자녀돌봄을 병행하도록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초등학교 2학년(만 8살) 이하 자녀를 둔 부모가 육아휴직(최대 12개월)을 합쳐 24개월까지 주당 15~35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임금 감소분 일부를 고용보험에서 지원받도록 했다. 정부는 앞으로 이 제도를 쓸 수 있는 대상을 초등학교 6학년(만 12살) 자녀가 있는 부모로 확대하고 사용기간도 36개월까지 연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신혼부부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포함됐다. 신혼부부가 주택 구매자금을 대출할 때, 낮은 금리(연 2.40%)로 이용할 자격을 기존 부부합산 연 소득 7천만원 이하에서 8500만원으로 올리고, 전세자금 대출(연 1.65%) 요건도 부부합산 연 소득 6천만원 이하에서 750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공공분양 다자녀 특별공급에 지원하기 위한 자녀 수도 올해 상반기 중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한다. 생후 3개월~만 12살 아동이 있는 가정으로 찾아가는 아이돌봄서비스 공급을 2022년 7만8천가구에서 2027년까지 23만4천가구로 3배 확대한다. 이외에도 부모급여는 내년부터 만 0살 월 100만원, 1살 50만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논의한 추진방안을 바탕으로 올해 안에 구체적인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저고위 상임위원인 홍석철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27일 사전 브리핑에서 “4차 기본계획엔 불필요하고 (저출산 대책과) 관련도가 낮은 정책들이 있다”며 “대통령 주재 1차 회의 이후에도 수요가 높은 과제를 시작으로 2~3차 순차적으로 여러 대책을 강구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저고위는 그동안 시행한 저출산 대책에 대해 “서비스·시간·수당 지원이라는 정책 외연은 갖췄으나, 산발적인 정책 도입으로 제도·현실적 사각지대가 생겼다.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도가 저하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날 정부 대책도 이전 정부의 정책과 상당 부분 닮은 ‘재탕 정책’에 그쳐 경제 여건과 고용 불안, 경쟁 심화, 젠더 불평등 등 가족 형성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이고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는 저출산 추세를 반등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정부가 선택·집중하겠다는 ‘저출산 5대 핵심분야’ 중 양육비 경감 분야 과제로 제시한 부모급여 확대는 2020년 수립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부터 포함됐던 내용이다. 이 계획에는 “2022년 출생아부터 만 0~1살 영아에게 (월 30만원) 보편적 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올해 1월부터 윤석열 정부가 이 수당의 액수를 늘리면서 부모급여로 이름을 바꿨다. △아이돌보미서비스 확대 △시간제 보육 확대 △유보통합(어린이집·유치원을 통합기관으로 재설계)도 4차 기본계획이나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가 낸 ‘중장기 보육 기본계획’에 제시됐다.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부호도 여전하다. 일·육아 병행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자녀 1명당 육아휴직(최장 12개월)과 근로시간 단축제를 합쳐 사용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을 기존 24개월에서 36개월로 늘릴 방침인데, 단축 근무 동안 줄어드는 소득을 보전할 대안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고용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등에겐 이러한 제도는 ‘그림의 떡’이다. 통계청의 고용형태별 사회보험 가입률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76.1%에 그쳤다. 최영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고용보험 미가입 상황 등을 감안하면 실제 근무시간 단축이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추세를 반등시키려면 노동·교육 등의 구조 개편과 함께 공적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제도를 소폭 확대·개편하는 것만으로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던 이들에게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분야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2%로, 당시 합계출산율이 1.5명을 넘던 프랑스(2.9%)·독일(2.3%)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번에 발표된 정책 중 역대 정부에서 건드리지 않았거나, 정책의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한 부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은 제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가 있어도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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