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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인화학교 사건 그후] 피해자들은 여전히 아프다

등록 2011-09-28 12:09수정 2011-10-02 18:00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2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있다.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이 지난 2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있다.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피해학생들과 함께 본 야구경기…피해자 등 11명 그룹홈 생활
“야구장은 처음이야.”
“치킨 빨리 먹고 싶다.”
“기아가 이길까?”

지난 24일 오후 4시30분. 광주광역시 광주무등야구장. 10대~20대 초반의 10여명이 곧 시작될 기아·두산 경기를 기다리며 티켓 교환대 앞에 서 있다. 몇몇은 응원을 위한 노란색 방망이 풍선을 불었다. 쌓여있는 치킨상자가 기대감을 더했다. 경기를 기다리는 다른 관객과의 차이점은 이들이 손짓으로 말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다.

6회말. 기아 타이거즈의 김상현 선수가 경기 첫 홈런을 쳤다. 경기장엔 함성이 넘쳐났다. 8000여명의 관중이 노란 야구방망이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빨간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21살 김소영(가명)씨만은 제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홈런 치는 걸 보지 못했다.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소영은 홈런을 치는지, 득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들리지 않는 소영은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치킨 한 마리를 끊임없이 먹었다. 소영은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크다. 소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도가니>에서 유독 파삭대며 과자를 먹는 아이 ‘유리’는 상당부분 소영과 닮았다.

인화학교 피해자 소영(가명)씨가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만난 기자와 쪽지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인화학교 피해자 소영(가명)씨가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만난 기자와 쪽지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소영은 청각장애 외에도 상처가 많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중학교 1학년때까지 5년간 광주시 광산구 인화학교에서 당시 교장, 행정실장, 생활재활교사 2명 등 교직원 4명으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 소영을 성추행한 혐의로 교장 김아무개씨는 1심에서 징역 5년에 벌금 300만원,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죄질은 심각했고, 명백한 유죄였지만 처벌은 가벼웠다. 2000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소영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성추행한 생활재활교사 박아무개씨는 징역 10개월을 살았다.

소영은 16살이 되던 해인 2006년 상처뿐인 도시 광주를 떠나 충주에 있는 특수학교로 옮겼다. 그러나 그 곳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낯설었고 몇몇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했다. 소영은 4년만인 지난해 다시 광주광역시로 돌아왔다. ‘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를 꾸려 사건을 알리고 해결을 위해 계속 싸워온 김용목 목사와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만들어진 홀더공동체를 다시 만났다. 소영은 지금 센터가 만든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 1·2급인 부모님으로부터는 제대로 돌봄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영의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았다. 김혜옥 홀더공동체 원장은 “매주 심리치료, 미술치료를 받고 있는데 우울지수가 심각할 정도로 매우 높다”고 말했다. 어느날은 기분이 좋았다가 어느날은 너무 우울했다가를 반복한다. 센터에서 다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어느새 혼자 외따로 떨어져있다. 나이가 제일 많지만 언니·누나 노릇도 잘 못한다. 그룹홈교사 김유술씨는 “자존감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동생들이 무언가 잘못했을 때 꾸지람을 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청각장애와 지적장애가 겹쳐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김혜옥 원장은 “청각장애아들이 일하는 곳에서는 지적 장애 때문에 일하기가 어렵고, 지적 장애아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주는 곳에 갔더니 그 곳에서는 청각장애가 있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는 아직 모른다. 김유술 교사는 “우울지수가 너무 높다보니 의지가 너무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얼굴이 잘생기고 여학생들과 사이가 좋은 권민호(가명·18)군은 별명이 ‘바람둥이’일만큼 인기남이다. 그러나 권군 역시 인화학교에서 남자 교사 이아무개씨로부터 2년간 강제 성폭행을 당했다. 그때 권군은 8살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2학년때까지 무려 2년간 추행은 지속됐다. 권군의 친형도 같은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지난 1월 집단심리상담조사 결과를 보면 민호의 상태도 심각하다.

한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가 미술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린 자화상.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한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가 미술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그린 자화상.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민호는 ‘나무 그리기’ 과제에서 기둥이 굵고 뿌리가 드러나 있는, 그러나 가지가 없는 나무를 그렸다. 상담사는 “가지가 없는 나무를 그린 것은 세상과의 상호작용이 억제돼 있고, 자신에 대해서도 위축감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며 “자아강도가 부족하고 불안감을 과잉 보상하고자 시도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소년의 상처는 사고 이후 9년이 지나도록 아물지 않고 있다. 소년을 성추행한 생활재활교사 이아무개씨는 징역 6개월의 실형을 받는데 그쳤다.

지금 홀더공동체에는 소영과 민호 외에도 당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여학생 6명과 남학생 5명 등 11명이 생활하고 있다. 중간고사 기간에 다리를 다쳐 절뚝이며 학교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행정실장에게 업힌 채 끌려가 성추행을 당한 박경희(21·가명)씨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당시 경희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행정실장은 경희를 사무실로 데려가 음란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행정실장이 다리 다친 경희를 데려가 성추행한 사건은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박씨가)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차례 취직한 공장에서 경희는 ‘무시당하는 느낌’ 때문에 관뒀다. 두번째 취직한 커피숍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나왔다. 경희의 심리상담 결과를 보면 “방어적 경향성이 크다”.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외상적 사건으로 인한 자아의 상처를 짐작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또한 경희는 “자신을 불안정하게 느끼지만 이에 대해 과도하게 보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며 “환경으로부터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두려워해 공상 세계 속에서 만족 추구의 원천을 찾고 있다”는 진단도 받았다. 경희를 지도하고 있는 공부방 교사들은 경희가 ‘공상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중이다. 두 차례 직장을 그만둔 경희에게 공부방 교사들은 교사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일을 제안했다. 김혜옥 원장은 “경희가 매우 즐거워하며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화학교 모습.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인화학교 모습. 영상화면 갈무리. 조소영 피디
도가니 속 주인공들은 홀더공동체의 돌봄 속에서 비교적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청각장애·지적장애 등 장애에 더해, 성폭력·성추행의 기억, 가해자들에 대한 미온적 처벌, 당시 인화학교 교장으로부터 역으로 당한 고소 등 2차·3차 피해를 받아왔고, 그 아픔을 다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야구장에서 만난 소영은 처음 만난 기자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기자가 “야구 좋아해요?”라고 수첩에 써서 묻자 “재미있어요. 좋아요”라고 답했다. 말을 건네자마자 기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몇 살이에요?”라며 기자의 나이를 물었다. “전 21살이에요.”라며 자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휴대폰을 내밀어 기자의 휴대폰 번호를 묻고 “문자 괜찮아요?”라고 쓰기도 했다.

소영이 기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교사 김유술씨는 걱정했다. “아이가 정에 굶주려 있어요. 그래서 한 번 번호를 알면 첫날에는 밤이 새도록 문자를 보내요. 그러다 상대방이 힘겨워하면 상처받죠. 예전 관계로 인한 상처때문에 아직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잘 못합니다.” 교사는 기자가 소영과의 관계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까봐 연락하지 말도록 부탁했다.

홀더공동체는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직접 꾸리고자 준비하고 있다. 김혜옥 원장은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그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고 말했다. 홀더공동체가 사회적 기업을 꾸린다면 경희는 바리스타가, 소영은 요리사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후원문의 (062)434-7792. 후원 계좌 농협 606-01-128374

광주/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관련영상>영화 도가니 예고편

【 한겨레 기사로 본 ‘인화학교 사건’ 일지 】 

(※ 일지를 클릭하시면 관련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2000~2004년 인화학교 장애학생들(7~22세, 8명 이상) 상습적 성폭력 가해

◆2005년

 -6월22일: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일부 교직원의 학생 성폭행 사실 제보됨
 -7월8일: 인하학교 성폭력 대책위 결성
 -11월17일: 전 행정실장과 재활교사 등 2명 성폭행 혐의로 유죄선고

◆2006년

 -5월16일: 재단 임원 해임명령 촉구하는 광주광산구청 앞 천막농성
 (~2007년 1월12일까지 242일 동안 지속)
 -8월21일: 국가인권위, 임원 해임 권고와 추가 가해자 6명 고발
 -8월29일: 광주광산구청, 임원 해임 명령
 -12월8일: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2007년

 -3월19일: 인화학교 중고등부 18명 등교거부 시작
 -4월26일: 학생들, 광주시교육청 앞 천막수업(~5월25일 마감)
 -5월28일: 학생들, 학교장에게 계란과 밀가루 던짐
 -5월31일: 학교장, 학생들 폭행 혐의로 고소
 -6월13일: 재단, 학생 성폭행 혐의로 직위해제됐던 교직원 복직
 -6월24일: 인화학교 학생들을 사랑하는 모임, 고소취하 서명
 -9월27일: 재단, 교사 4명 중징계

◆2008년

-1월28일: 성폭력 전임 교장 징역 5년 선고
-7월10일: 광주고법 형사1부(이한주 부장판사) 전 광주인화학교장에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 선고

◆2009년 6월: 소설 <도가니> 출간(저자 공지영)

◆2010년 인화학교 학생간 성폭력 사건 발생, 지자체 조사 거부

◆2011년

-7월6일: 인화학교 ‘서영학교’로 교명 세탁 시도, 재활 사업 대상을 청각, 언어장애에서 지적 장애로 넓히기 위해 정관 변경 신청.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 인화학교의 이름, 정관 변경신청 규탄하는 기자회견 개최
-7월11일: 광주시, 명칭 변경을 위한 정관변경 신청서 반려

 (교장, 최근 췌장암으로 사망. 성폭력 가해자, 책임자는 현재까지도 인화학교 소속으로 정식 출근)

 -9월 영화 <도가니> 개봉

 정리: <한겨레> 데이터베이스팀, 디지털편집팀 김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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