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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슬기로운 기자생활] 참사의 또다른 상주들

등록 2022-11-10 18:23수정 2022-11-10 19:19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과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 가족, 생명안전 시민넷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10월31일 이태원역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묵념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과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피해 가족, 생명안전 시민넷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10월31일 이태원역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아 묵념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김민제 | 사회정책팀 기자

일면식이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하필 그게 기자일 때의 난감함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서다. 그래서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거절당할 준비를 해두는 편이다. ‘대뜸 전화해 죄송하다’ ‘10분만 내어달라’는 말도 언제든 꺼낼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일주일 전 그날의 대화는 그런 예상과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10월29일 서울 이태원 좁은 골목길에서 156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벌어지고 나흘이 지난 뒤였다 . 내게 주어진 업무는 앞서 다른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이 비극을 어떻게 바라보냐 ’고 묻는 일이었다 . 무겁고 어려운 질문인 터라 인터뷰를 거부하거나 조각난 답만 내놓는다 해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통화연결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마음의 준비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모르는 기자의 전화가 당혹스러울 법도 한데, 수화기 너머 취재원들은 휴대폰을 붙들고 30∼40분가량 대화를 이어갔다 .

이들은 참사 발생부터 책임 소재 문제까지 아픈 기억들을 복기하면서 , 마치 질문에 준비하기라도 한 듯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처형을 떠나보낸 윤석기씨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시 언론이나 행정기관에서 방화범과 승무원만 잘못인 것처럼 몰아갔어요 . 하지만 본질적인 책임은 불연재가 아닌 난연재로 만들어진 ‘불쏘시개 ’ 전동차를 허용한 법과 제도, 이것을 만든 위정자에게 있었습니다 .”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로 남동생이 실종된 허영주씨 답변은 이랬다 . “정부는 사건을 잠재우는 데만 집중했지 부처별 매뉴얼을 정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진 않았어요. 이런 임기응변식 대응이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 아닐까요 .” 계획한 기사 분량은 원고지 7장이었는데, 선배 기자가 취재한 세월호 참사 유족 , 산재 사망자 유족의 인터뷰까지 한데 모이니 100장이 훌쩍 넘었다 .

100장 넘는 이야기가 쌓이도록 이들이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한 건 왜일까. 갑자기 걸려온 기자의 전화에 당황하지 않고, 정돈된 말들로 참사를 복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어떤 시간을 지나온 걸까. 다시 묻지는 못하고 인터뷰 내용을 되짚어봤다. 2003년 대구지하철과 2014년 세월호,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 등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지난 시간은 각종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치인과 공무원을 찾아다니며 토론회와 시위와 언론 인터뷰에 참여하는 일로 채워져 있었다.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그간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또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는 비통함도 각기 다른 사연 속에서 공통으로 읽혔다.

특히 눈에 밟힌 것은 미안하다는 문장이었다 . “대형참사를 먼저 겪은 가족들로서 그분들(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죠. 숨진 가족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거든요. 그건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것일 테고 그러려면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어요 . 근데 또 참사가 벌어졌으니 ‘상주 노릇 ’을 제대로 못했다고 반성하게 되네요 .”(윤석기) 국가 안전관리체계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동안,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고민하는 일은 참사의 상주들이 떠안고 있었다. 바뀌지 않는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넘어 미안함마저도 유족의 몫이 됐다. 그러니까 상주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운 시간이 낯선 기자의 전화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휴대폰을 붙들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대화 말미 ‘이태원 참사의 유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을 때 처음으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 머뭇거림이 납득할 수 없는 일로 가족을 잃고 마주한 고통의 무게를 말해주는 듯했다. 아무리 오랜 대화를 나눈다 한들 결코 알 수 없을 무게일 것이다. 짐작할 수 없는 마음 앞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지면을 빌려 바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그리고 이태원의 평범한 길거리에서도 누구도 죽지 않고 안전해야 한다는 요구를 다시 한번 전하는 것뿐이다.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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