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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연역?귀납? 외우지 말고 생각하자고!

등록 2007-04-01 17:21

경기 고양시 일산대진고 1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논리학 시간에 “생각하지 않고 겉만 봐서는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강조하는 윤신혁 교사의 수업을 듣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대진고 1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논리학 시간에 “생각하지 않고 겉만 봐서는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강조하는 윤신혁 교사의 수업을 듣고 있다.
1학년 빠집없이 주3시간 논술수업
친숙한 사례따라 느끼고 생각하기
교재 분량 느는만큼 아이들도 쑥쑥
우리학교 논술수업 짱 / 일산대진고 윤신혁 교사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라고들 하죠? 과연 모두가 즐거웠을까요?”

지난달 28일 경기 고양시 일산대진고 1학년2반 ‘논리학’ 수업 시간, 여고생들은 윤신혁(32)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축구공을 만드는 고된 일을 한 파키스탄 어린이들은? 환경 미화 명분으로 거리에서 쫓겨난 노점상들도?”

한-일 월드컵 경기 장면, 10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옷차림, ‘개똥녀’ 사건…. 윤 교사가 꺼낸 사례들이 친숙해서일까? 학생들이 그다지 긴장한 표정은 아니었다. 윤 교사는 ‘겉만 봐서는,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물의 참모습을 보지 못할 수 있음’을 학생들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려 했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힘 길러주기


잠자는 생각에 말걸기
잠자는 생각에 말걸기
‘철학·논리’ 교사인 그는 학생들이 추리, 연역, 귀납, 오류 같은 개념들을 ‘외우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러려면 아이들이 생각하기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나 블러그, 개그 프로그램 등에 나온 소재들을 생각할 거리로 내놓는 건 그래서다. 윤 교사 등이 만든 이 학교의 논리학 및 논술 교재 <잠자는 생각에 말 걸기>는 이런 사례들이 가득하다. 교재는 윤 교사가 이 학교에 온 2003년 37쪽 분량에서 올해는 228쪽 분량으로 진화해 왔다. “재미있다고 느끼면, 생각하기 시작해요. 그런 다음에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연역인지, 귀납인지를 체험하도록 하는 거죠.” 그는 이날 학생들을 웃기기도 하고 심각하게 하기도 하며 수업을 끌어갔다. 10대들만의 용어도 섞어가면서. 강현정(16)양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정혜민(16)양은 “철학적인 내용도 다루는데 재미 있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수다쟁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지닌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수업을 맺었다.

보기 드문 논술 수업

일산대진고 1학년생 670여명은 빠짐없이 주 3시간씩 논술 수업을 한다. 주요 과목의 시간 수에 버금간다. ‘논리학’은 교과 재량 2시간, ‘논술’은 창의적 재량 1시간을 활용한다. 윤 교사와 홍지흔 교사가 논리학을, 윤리 교사 2명이 논술을 맡았다. 이만큼 논술 교육을 하는 학교는 드물다. 사립인 학교 쪽의 지지가 있어서 가능한 것 같다고 윤 교사는 여긴다. 한 공립 고교에선 교사가 없어 포기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 선택과목군 ‘교양’에는 논리학 등 많은 과목들이 있지만 철학 교사는 많지 않고, 논리학 수업을 하는 학교도 드물다.

논술시험 대비도, 편견 극복도

논술 과목은 중학교 때도, 고 2·3학년 때도 없다. 그래서 윤 교사는 “1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한다”고 했다. 이 때 생각하는 힘을 갖추느냐에 따라, 2·3학년 때 이른바 입시 논술을 공부하는 뜻도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문제에 뛰어드느냐, 아니면 문제에 집착하느냐가 갈린다는 것이다.

퀴즈, 역할놀이, 마인드맵, 브레인스토밍 등 갖가지 방법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북돋우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논술 쓰기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과 기술을 길러주는 것이 핵심이다.

2학기엔 그런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에 역점을 둔다. 신문이나 글을 뜯어보는 능력을 다진 다음, 논리적으로 말하기와 글쓰기로 이어간다. 곧 ‘면접’과 ‘논술’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수업은 자기 소개서 쓰기와 논술 시험 치르기로 마무리된다.

논리학과 논술 수업이 비단 대학 입시에 대비하려는 학생들만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을 지닌 채 생각하지 않는다면, 평생 편견에 갇히지 않겠습니까? 편견일 수 있는 자기 생각을 밖으로 꺼내서 고칠 수 있게 해 주는 게 논리학이고 논술 수업입니다.” 윤 교사가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든, 곧바로 사회로 나가려는 학생이든, 논술 교육이 참 절실하다고 여기는 이유다.


2·3학년 실전형 첨삭지도 ‘붕어빵 학원 부럽지 않아

일산대진고는 대학 진학을 위해 논술을 더 공부하려는 2·3학년 학생들에겐 보충수업으로 뒷받침한다. 원하는 학생들에 한해 ‘실전 논술’ 작성과 첨삭 지도를 하는 것이다. 2학년은 8명씩 팀을 여러 개 꾸리고, 3학년은 지원 대학별로 일대일 맞춤 교육을 한다. 지난해 윤신혁 교사에게 논술 보충수업을 받았다는 3학년 박경난(18)양은 “팀 친구 8명이 쓴 글을 함께 보며 공개 첨삭을 했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학원이 아니라, 학교가 제대로 논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첨삭 지도만 봐도, 학생이 더 나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고, 그러려면 진심으로 첨삭 지도를 해 줘야 하는데, 그러려는 교사들이 다수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 올해 교사들의 논술연구 동아리가 세 팀이나 짜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윤을 좇을 수밖에 없는 학원들은 그러기가 힘들다고 윤 교사는 말한다. 학원들이 학생들에게 해 준 논술 첨삭지도 내용이 단적인 보기다. 대표강사의 분석에 바탕해 여러 학생의 논술문에 거의 비슷한 지적들을 써넣은 적이 많더라는 거다. 때문에 윤 교사도 자신의 구실을 ‘사고하는 방법을 전달하는 부품’으로 한정하려 애쓴다고 했다. 아이들의 사고가 누군가의 틀에 고정되지 않도록 하려 해서다.

윤 교사가 보기에, 논술은 상식이다. 좋은 논술문이란 누군가의 눈물을 뽑아내는 글이 아니라, 상식에 바탕해 자기 생각을 풀어내 남이 받아들이게 하는 글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가 논술 비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일 것”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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