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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글쓰기 내공’ 책읽기에 답 있다

등록 2007-03-18 17:21

송승훈 교사(오른쪽)가 3학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송승훈 교사(오른쪽)가 3학년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우리학교 논술수업 짱 / 남양주 광동고 송승훈 교사

“좋은 논술요? 어떤 주제든 학생들이 진솔하게 느끼는 자기 이야기를 쓰는 글 아닐까요?”

경기 남양주 광동고등학교에서 독서, 국어생활을 가르치는 송승훈(35) 교사는 인터뷰 내내 ‘교감’과 ‘일상’을 얘기했다. 송 교사는 최근의 논술 열풍이 지금까지 학교 교육에 생략됐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자칫 자신에게 충실한 글쓰기를 익혀야 할 시기에 원론적이고 색깔없는 글을 쓰는 것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따로 둔 논술반엔 참여하지 않고, 대신 한 학기 두 권씩 책을 학생들에게 읽힌 뒤 다섯 장(A4용지로) 안팎의 감상문을 쓰는 것으로 글쓰기를 가르친다.

이렇게 해서 논술 준비가 될까? “저 혼자 하면 안 되죠. 하지만 모든 과목 교사들이 함께 하면 됩니다. 학생들이 보통 열 과목을 듣는데 한 과목에서 한 권씩만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하죠. 그리고 이 책으로 두세 시간 수업을 하면 전교생이 한 학기에 열 권을 읽고 20~30시간의 논술 수업을 듣는 셈이 되죠.” 광동고 교사들은 올해부터 이런 식으로 논술 수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주제와 관련된 단행본을 사거나 △책의 일부를 발췌해 함께 읽거나 △도서관에서 독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선택은 교사 몫으로 남겨뒀다.

한 과목 한 권씩 읽어도 한학기 열 권
또래 감상문 속 구조 익히고 글감 찾기
진솔한 자기 이야기가 바로 좋은 글!

송 교사는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 활동 등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수업 방식을 개발했다. 다섯 장 분량의 만만찮은 감상문도 ‘구조 익히기’와 ‘글감 찾기’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구조 익히기’는 먼저 이전 학생들이 쓴 감상문 가운데 잘 쓴 것을 40편 정도 추려 학생들에게 읽게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글을 한 편 골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시작은 어떻게 하고 전개는 어떻게 해 나가는지 등 글 짜임새를 분석하고 익히게 한다. 자기 기질과 맞는 글의 구조를 익힌 다음엔, 글감 마련 훈련을 한다. 책에서 기억할 만한 것, 책 내용과 연관된 세상의 일, 책과 관련된 개인적 체험 등을 각각 3~5가지쯤 적어보게 한다. 이렇게 하면 열 가지 정도 글감이 쌓이는데, 연관된 것들을 묶고, 쓰고자 하는 얘기를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해 개요를 짠다. 묶이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 송 교사는 “사람마다 기질이 달라 좋아하는 글도 약간씩 다르다”며 “특히 예전의 명문보다 또래 아이들 글 가운데서 모델을 찾는 게 글쓰기 교육엔 정말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글을 정확히 읽고, 자신이라면 어땠을지 고민하고, 그것을 다시 세상과 연결시켜 보라”고 가르친다. 간단해 보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도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다. “<운수 좋은 날>을 보기로 들죠. 21세기를 사는 학생들에게 80~90년 전 이야기가 쉽게 다가올 리 없죠. 그럼 묻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이 소설을 쓴다면 누가 주인공이 될까?’ 폐품 줍는 할아버지나 경비 아저씨 등이 나옵니다. 다시 묻죠, ‘니가 남양주 시장이라면 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거니?’ 급식 지원을 하고, 보건소를 싸게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등 여러 얘기가 나오죠. 그럼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돈이 많이 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거야?’ 이때 나오는 설득 과정을 글로 옮기면 훌륭한 논술 한 편이 되지 않을까요?”

남양주/글·사진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너무 어려운 문제 내고 삶과 동떨어진 책 소개
이러면 ‘말짱 꽝’ 됩니다

송승훈 교사는 최근의 논술 열풍에 대해 기대보다도 우려가 크다고 했다.

“책읽기 운동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아이들도 자신의 삶에 기반한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가는 중이었거든요. 이 흐름에 논술 열풍이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지 많이 걱정되요.” 송 교사는 논술이 강조되면서 아이들이 소화하기 힘든 책들이 소개되고, 또 그것들이 많이 읽히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일부 대학에서 발표하는 고전 100선 등은 대학생들이 읽을 책들이죠. 그것을 급한 마음에 고교생에게 읽게 하면 오히려 책읽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는 대학들이 과도하게 어려운 제시문을 주고 논제도 배배 꼬는 것을 ‘나쁜’ 문제 출제 방식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요구하면서 하이에크의 글을 주는 대학이 있어요. 심지어 교사들도 이해하기 힘든 제시문도 있죠. 반면 법정 스님이나 니어링 부부의 글을 제시문으로 주는 대학이 있는데, 이 정도가 고교생들이 이해하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수준 아닐까요?”

그는 “학교에서 만 가지 준비를 해도 대학에서 문제를 어렵게 내면 말짱 꽝”이라면서 고교 수준에 맞는 출제를 당부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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