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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박물관은 지루해? 교사가 예습하면 달라!

등록 2007-12-03 18:49수정 2007-12-03 19:13

경기 오산 대호초 임동희 교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목칠공예실에서 우리 조상들이 목가구에 달았던 장식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경기 오산 대호초 임동희 교사가 국립중앙박물관 목칠공예실에서 우리 조상들이 목가구에 달았던 장식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교실 밖 교실] 경기 오산 대호초 ‘교과 연계 박물관 수업’
전문가 연수 받고 교육실습까지
꼼꼼하게 활동지·프로그램 개발
체험 뒤 발표로 사후학습도 연계

“저기 보이는 유물이 경상입니다. 일종의 작은 책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경상의 양 끝을 자세히 보세요. 두루마리처럼 감겨 올라가 있죠?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멋있으라고요.”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요.” “예. 맞아요. 저 가구 하나만 봐도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멋스럽고 실용적인 가구를 만들어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7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목칠공예실. 경기 오산 대호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의 ‘교과 연계 박물관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수업 주제는 ‘조상들의 멋과 슬기’. 사회 ‘조상들의 생활도구’ 단원과 미술 ‘우리나라 미술의 특징을 알고 감상하기’ 단원에서 공통 주제를 뽑아내 박물관 체험학습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수업이었다. 학생들은 담임인 임동희 교사가 미리 만들어 나눠 준 활동지를 들고 목칠공예실과 금속공예실, 도자공예실을 부지런히 오가며 전시물을 감상하고 활동지의 빈 칸을 채워나갔다. 활동지에 제시된 활동은 △김홍도의 <서당> 등 활동지에 인쇄된 조선시대 풍속화에 등장하는 유물 찾아 이름 쓰기 △목제품과 백자에서 십장생 무늬 찾기 △조선시대 화장품 그릇 안에 숨겨진 편의장치 상상해서 그려 보기 등 다양했다.

임 교사는 “산만한 아이들이 많아 박물관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의외로 집중을 잘 하고 다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했다”며 “모둠별로 서로 의견을 나누고 도와가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두 시간 가량 전시물을 감상한 뒤, 오후에는 박물관 실습실에서 체험활동을 했다. 오전에 본 유물 사진 15장과 각 유물의 무늬를 확대한 사진 15장을 코팅해 만든 카드를 뒤집어 놓은 뒤, 모둠원들이 돌아가며 카드 두 장씩을 뒤집어 짝을 맞추는 ‘유물카드 짝짓기 놀이’와 한지로 책을 만드는 활동이 이뤄졌다.

수업을 마친 박현미(12)양은 “조상들이 만들어 쓴 물건을 직접 보면서 수업을 하니까 훨씬 생생하게 조상들의 멋과 슬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민송(12)양도 “이렇게 활동지를 들고 다니며 유물을 찾아 보는 것이 그냥 와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호초등학교에서 박물관 수업을 하고 있는 반은 5학년 3반뿐이 아니다. 11월 들어 3~6학년 12개 학급이 돌아가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일제 체험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10월에는 3~4학년 학생들이 온양민속박물관으로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박물관 현장체험은 하루 만에 끝나지만, 그 하루의 수업을 위해 이 학교 교사들이 들인 공은 엄청나다.

지난 5월 교사 22명이 뜻을 모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문화예술교육 선도학교 공모에 지원해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뒤 교사들은 외부의 박물관 교육 전문가들을 초청해 자체 연수를 실시하고, 이 학교 김봉수 교사 등 일찌감치 박물관 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들과 함께 박물관 교육 실습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이와 함께 교육과정 분석을 통해 박물관 체험학습에 적합한 교과와 단원을 골라 각 학급별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했다. 10월 중순부터는 학급별로 박물관 수업 지도안을 짜고 학생용 활동지와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정교한 지도안과 활동지를 만들기 위해 교사들마다 2~3차례씩 학생들이 체험할 박물관과 전시실을 사전 답사했다. 김 교사는 “한 번을 오더라도 제대로 준비해서 와야 아이들이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되고, 다시 박물관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며 “그냥 무작정 데려와서 풀어놓으면 시간만 허비하는 지겨운 경험이 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의 박물관 연계 수업은 한 차례의 ‘나들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전·체험·사후학습으로 구성된다. 5학년 3반의 경우, 사전학습으로 사회시간에 조상들의 생활도구를 인터넷 검색과 사진 등을 통해 알아보고, 도덕시간에 박물관 관람 예절에 대해 배웠다. 체험을 마친 뒤에는 국어시간에 사후학습으로 체험한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발표하는 수업을 했다. 한 주제를 중심으로 사회와 미술, 국어, 도덕시간을 자연스럽게 연계해 교과통합형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김 교사는 “7차교육과정은 교과간 주제 통합을 통해 교육과정을 체험 위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며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한층 내실 있는 박물관 연계 교육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교사들이 먼저 배우자 뜻 모았죠

숨은 공신 ‘체험학습연구회 모아재’

대호초등학교가 펼치고 있는 박물관 연계 수업의 숨은 공신은 ‘체험학습연구회 모아재’다. 이 학교의 박물관 교육을 주도하고 있는 김봉수 교사가 모아재 회장이고, 임동희 교사도 창립 회원이다. 이 학교에는 모아재 회원이 두 교사를 포함해 8명이나 된다.

모아재는 서울 무악재의 다른 이름이다. 한때 무악재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모아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모아재는 2002년 9월 전교조 수원초등지회장이던 김 교사를 중심으로 전교조 조합원들이 만들었다. 주5일제 실시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정부 차원의 준비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교사들이라도 나서 대안을 만들어 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54명의 초등학교 교사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서울과 수원, 오산, 가평 등에서 6개 팀, 17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주축이지만, 회원 중에는 박물관 학예사와 학부모도 있다.

모아재가 그동안 가장 역점을 둔 일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박물관 교육 연수였다. 교사가 바뀌어야 교육이 달라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여름·겨울방학 때 연수를 실시하고 있는데, 올 겨울방학 연수는 1월 14일~18일 열린다. 교사들이 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는 교사용 지도자료 개발에도 힘을 쏟는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후원으로 경기지역 5개 박물관의 상설전시를 바탕으로 한 교사용 지도자료 <박물관에서 놀자!>를 펴냈다. 올 8월에는 경기도박물관협의회의 의뢰로 9개 박물관에서 쓸 수 있는 활동지 및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담은 지도서 <박물관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펴냈다. 이들이 개발한 박물관별 수업지도안과 활동지 등은 모아재 홈페이지(moajae.com)내려받을 수 있다. 이밖에 2005년부터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는 토요일 박물관 체험활동 프로그램인 ‘박물관에서 놀자’를 진행해 오고 있다. 김 교사는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다 빠져나갈 것 같지만 결국 조금씩 스며들어 콩나물이 잘 자라듯이, 어릴 때 박물관에서 즐거운 경험을 맛본 아이들은 문화적 소양을 갖춘 시민으로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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