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총장 직선제 폐지’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고현철 부산대 교수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민홍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의를 들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총장 직선제 폐지 고집하는 교육부
‘총장 직선제 폐지 반대’를 요구하며 투신해 숨진 고현철(54) 부산대 교수 사건을 계기로 대학가에서 현행 ‘총장 공모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재점화하고 있다. 얼핏 보면 총장 직선제가 쟁점이지만, 그 바탕엔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을 정부가 무시해온 데 대한 항변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야당 국회의원, 교수·학술단체 등은 연일 “대학의 자율성 말살 정책이 부른 참극”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교육부는 총장 직선제의 폐해만 강조하며 기존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총장 직선제 폐지를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현안 질의에 “여러 논의를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면서도 “(선거가) 과열되고, 학내 분열에 이르는 인사 등 행정적 비효율성 같은 총장 직선제의 여러 가지 폐단이 있다”고 말했다. 총장 직선제 폐지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87년 6월항쟁 흐름속 임명제 대체
선거과열·논공행상 등 부작용 빌미
MB말기 재정지원 무기로 폐지 압박
현 정부, 한술 더떠 구성원 참여 봉쇄 압박에 밀린 국립대 ‘공모제’로 바꿔
후보난립 등 폐단에 교육부는 귀닫아
시키는대로 뽑은 총장 잇단 임용거부
총장 직선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흐름을 타고 ‘정권의 대학 통제 장치’였던 총장 임명제를 대체하며 83개 국공립·사립대로 확산됐다. 하지만 일부 대학에서 파벌 형성, 보직 나눠 맡기 등 논공행상 등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빌미로 이명박 정부가 재정 지원을 무기 삼아 총장 직선제 폐지를 압박했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 정책 등을 밀어붙일 때 직선 총장이 구성원의 뜻에 따라 맞서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는 직선제 폐지에 더해, 재정 지원 삭감·환수 등을 수단으로 대학 구성원이 총장 선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원천봉쇄했다.
이런 압박에 밀려 대다수 국립대는 교육부가 제시한 ‘총장 공모제’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무작위로 뽑힌 교수와 외부 인사들이 ‘전권’을 갖게 되고, 자질이나 능력보다 추천위원과의 친분이라는 ‘교육 외적 변수’로 결과가 갈리는 폐단이 빈발했다. 후보가 난립하는 등 폐해가 끊이지 않자 보수 성향 교사·교수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지난해 7월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교총은 총장 직선제 폐지를 재정 지원과 연계하는 정부 방침에 반대하며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간선제와 공모제의 혼합 등 다양한 선출제도를 대학 구성원 합의로 도입하라는 제안도 내놨다.
하지만 교육부는 ‘제도 도입의 초기 단계’라며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심지어는 교육부가 권고한 방식으로 총장 후보를 뽑은 공주대·한국방송통신대·경북대의 총장 후보 임용제청을 잇따라 거부했다. 교육부는 임용제청 거부 사유조차 밝히지 않아 행정소송에 휘말렸다.
교수·학술단체 등은 ‘총장 직선제 포기를 강요하는 교육부의 대학 자율성 침해’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직선제로 복귀하든, 교육부가 제시하는 총장 공모제를 채택하든 대학 구성원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라는 주문이다. 지금처럼 교육부가 대학 구성원 위에 군림하며 참여를 가로막는 상황은 타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는 ‘교수들만의 선거’로 한정돼 총장 직선제 폐단이 속출한 만큼, 교수·직원·학생 등 대학 내 모든 구성원으로 참여 폭을 넓히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라’는 목소리는 물론, 현행 총장 공모제의 부작용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를 닫고 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선거과열·논공행상 등 부작용 빌미
MB말기 재정지원 무기로 폐지 압박
현 정부, 한술 더떠 구성원 참여 봉쇄 압박에 밀린 국립대 ‘공모제’로 바꿔
후보난립 등 폐단에 교육부는 귀닫아
시키는대로 뽑은 총장 잇단 임용거부
국립대 총장 직선제 무력화 경과
대학 총장 직선제와 교육부 총장선출 방식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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