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불거진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그 당시 검찰총장 아니었나요?”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 사주 의혹 강제수사에 착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10일 오후 고발장 작성 의혹이 불거진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과 함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고발장 접수에 따른 단순 피고발인 신분 입건이긴 하지만, 손 검사와 윤 전 총장 연결고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수사 첫날부터 윤 전 총장을 입건한 것은 통상적 수사 흐름보다 한참 템포가 빠른 셈이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손 검사만 입건했다. 추가 입건 가능성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는데, 오후에는 “오전에 실수로 입건자를 누락했다”며 윤 전 총장 입건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앞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압수수색 영장에 윤 전 총장 이름이 적시돼 있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이 사안의 폭발력을 감안해 비공개했다가 뒤늦게 입건 사실을 공개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오후 공수처 브리핑에는 윤 전 총장 입건 이유와 근거를 묻는 취재진 질문이 집중됐다. 공수처 관계자는 “언론에서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 오른팔이라고 하지 않았나. 윤 전 총장도 (기자회견에) 나와서 나를 수사하라고 한 것 아니냐”고 했다. 또 “국민적 의혹 제기가 됐기 때문에 실체 규명이 필요하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다음의 일이다. 수사기관이 나서서 사실관계를 밝히라는 것이 언론의 요구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당장 뚜렷한 근거가 없지만 일단 수사부터 해서 죄를 찾아보겠다’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어서 윤 전 총장 쪽과 국민의힘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번 수사는 공수처 제13호 사건이다. 지난 1월 공수처 출범 이후 출범 목적에 맞지 않는 ‘자잘한’ 사건들만 다뤄온 공수처가 경쟁기관인 검찰을 제치고 먼저 뛰어든 ‘초중량급’ 사건이다. 대선을 앞두고 검찰총장 출신 제1야당 유력 대선주자, 현직 검사, 국회의원 등이 두루 관련돼 있어 정치적 휘발성이 큰데다, 이미 대부분 물증이 훼손·삭제됐을 가능성이 커서 수사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수처는 “시간이 지날 수록 증거 훼손 우려가 커서 다른 사건보다 우선해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럴 때일수록 수사 방향과 강도, 완급을 조절하며 수사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수사 대상자들이 이런 유형 수사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지금 상황에서 공수처 수사 역량에 의문이 남는다. 만약 공수처에서 (성급히 수사에 들어갔다가) 이렇다할 성과를 못 냈을 때, 이후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공수처가) 인력도 없고 경험도 없고 하지만 사안의 엄중함을 알기에 인력을 모두 투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신속하게 사실 규명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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