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연 대법관 ‘그분’ 의혹 전면 부인…“필요하면 검찰 수사 받겠다”

현직 대법관으로 기자회견 자청
대선토론회, 의혹 보도에 대해 “법적 조치 취할지 검토 중”

조재연 대법관이 23일 오후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장동 녹취록 속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라고 보도한 기사를 인쇄한 자료들을 들어보이며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명진 기자 [e-mail]

최근 언론 보도로 대장동 녹취록 속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조 대법관은 2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약 30분 동안 기자회견을 열고 화천대유 관계자들 사이의 대화에서 언급된 ‘그분’이 자신이라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논란을 끝내기 위해)필요하다면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밝혔다. 현직 대법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조 대법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궁금한 점을 소상히 밝히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분’ 의혹은 지난해 10월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에서 김씨가 “천화동인 1호는 내 것이 아닌 걸 다들 알지 않느냐. 그 절반은 ‘그분’것”이라고 언급한 것이 드러나며 불거졌다. 당시에는 ‘그분’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나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지난 18일과 22일 김씨와 정 회계사가 나눈 녹취록을 공개하며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라고 보도한 뒤 조 대법관이 ‘그분’으로 지목됐다.

조 대법관은 녹취록에서 김만배씨가 자신을 ‘그분’으로 언급하고, 자신의 딸에게 집을 마련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김만배씨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단 한번도 만난 일이 없다. 일면식도 없다. 김씨뿐만 아니라 대장동 사건에 관련됐다는 그 어느 누구와도 통화하지 않았다”며 “저나 제 가족, 친인척 중에서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가 왜 조 대법관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대장동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 왜 이런 얘기를 나눴는지 저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조재연 대법관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4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불거진 대장동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전 잠시 마스크를 벗어보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조 대법관은 필요하면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등 의혹 해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대법관은 “검찰이 대장동 수사를 시작한 뒤 단 한번의 연락이나 문의, 조사 요청도 받지 못했다”며 “저와 관련된 일에 한해 필요하다면 검찰이 즉시 불러 주길 바란다. 논란을 종식하는 데 검찰도 일정 부분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딸이 실제 거주지를 입증할) 주민등록등본 등 필요한 자료 제출은 대법원이든 검찰이든 어느 기관에서든 요청하면 즉시 응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녹취록에는 지난해 2월4일 김씨가 정 회계사에게 “저분은 재판에서 처장을 했었고, 처장이 재판부에 넣는 게 없다. 그분이 다 해서 내가 원래 50억원을 만들어서 빌라를 사드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씨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조 대법관을 지칭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조 대법관은 2017년 6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 제청으로 문재인 정부 첫 대법관으로 임명됐고,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다.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2020년 7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 21일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회에서 ‘그분’이 조 대법관이라고 공개적으로 거론 되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녹취록에 거론된 ‘그분’에 대해 “조재연 대법관이라는 게 확인돼 보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 법관은 “대선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서 제가 제 의견을 말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후보의 발언이나 언론보도에 대해 법적인 절차를 밟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타인의 명예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생각을 한다. 법적 조치를 취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