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 어머니인 조미은씨와 남편 이종철씨가 새해 첫날인 1일 낮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을 처음 찾은 뒤 오열했다. 처음 참사 현장을 찾았다는 조씨는 “그동안 무서워서 못 찾았다. 참사 현장을 찾으려고 해도 내 아들과 여기서 숨진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못 왔다”라며 골목길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부부는 오가는 사람의 인적없는 골목길에서 한참을 통곡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금까지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릴 것 같아 무서워서 가지 못했지만, 새해를 맞아 한 번쯤은 가봐야 할 것 같아 남편과 함께 참사 현장을 가봤어요. 지한이 생각이 나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우 고 이지한씨 어머니 조미은(54)씨는 모두가 새해의 꿈에 부푼 1일 낮 이태원 참사 현장을 처음으로 찾아가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 두려움에 직접 현장에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새해를 맞아 용기를 냈다. 조씨는 “그 좁은 골목에서 도대체 그 많은 아이가 어떻게 목숨을 잃을 수 있었는지 믿을 수 없다”며 “끝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에 모인 이태원 참사 유가족 50여명이 0시에 맞춰 희생자들의 이름이 띄운 휴대전화를 하늘로 들어 올린 채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제공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65일째인 2023년 새해 첫날, 유가족 50여명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에 모여 새해를 맞았다. 전날 밤 11시30분께 시민분향소에 모인 유족들은 1월1일 0시에 맞춰 희생자의 이름이 띄워진 휴대전화를 하늘로 들어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렀다. 이날 모인 유가족들은 1일 새벽 2시까지 그리운 가족들을 추억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했다고 한다.
이날 아침 시민분향소에서 만난 유족들은 떠나보낸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었다. 이종철(55) 이태원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생전 지한이가 ‘사람이 많지 않고, 해가 잘 보이는 장소’를 알아놨다며 새해엔 그곳에 가자고 했지만, 결국 갈 수 없게 됐다”며 “다른 사람들은 기뻐하는 새해가 유족들에겐 가장 슬픈 날 중 하루가 됐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더 커진다”고 했다.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57)는 “매해 함께했던 딸 없이 새해를 보낼 수 없을 것 같아 분향소에 나와 다른 유가족들과 서로를 위로했다. 새해엔 명동성당에서 결혼하고 싶다던 딸을 생각하며 영정 앞에서 ‘별이 된 상은아 보고 싶다. 영원히 밝게 빛나렴’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유족들의 새해 소원은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였다. 고 최민석씨 어머니 김희정(55)씨는 “새해엔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참사를 당했는지 그 과정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방에 있는 유골함을 납골당에 봉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내고 “2023년에는 10·29 이태원 참사의 철저한,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에서 고 이지한씨 어머니인 조미은씨가 분향소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중단됐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다. 김희정씨는 “지난 30일 두번째 공식 추모제에서 쓰러졌다. 분향소 앞 등에서 ‘아이들이 놀러 갔다 죽었다’, ‘마약을 했다’와 같은 막말에 아이들이 누명을 쓰는 것을 보면 수천개의 칼이 다시 가슴에 꽂히는 느낌이다.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도 각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소원을 빌었다. 10분 넘게 희생자들의 영정을 둘러 본 유상훈(45)씨는 “참사 이후 이태원 1번출구에 만들어진 추모공간에 간 적 있었지만, 희생자들의 얼굴은 본 적이 없어 시민분향소를 찾게 됐다”며 “새해에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조사와 책임소재 규명이 명확하게 밝혀지길 바란다.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는 건 이것뿐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처음 자원봉사에 나선 대학생 이의정(26)씨는 “말도 안 되는 참사가 일어나고, 참사 이후엔 유족 동의 없는 희생자 명단 공개와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 등 말도 안 되는 논란이 이어졌다”며 “새해에는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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