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경찰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보호하는 데 총동원된 느낌입니다. 한 장관과 관련된 사안에는 유난히 호들갑스럽고, 다른 사안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행태가 반복됩니다. 공직자 감시와 언론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최우선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계속됩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 장관 개인정보 유출 수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공인 정신’ 안 보이는 한동훈 장관
한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 자료를 국회의원이 기자에게 제공하고 또 기자가 다른 기자와 공유한 것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게 이번 수사가 겨냥한 혐의의 얼개입니다. 경찰은 <문화방송>(MBC) 뉴스룸과 기자의 자택,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 등을 전방위적으로 압수수색했습니다. 이 사안이 이렇게까지 요란한 수사를 벌여야 할 사안인지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억지로 해코지하기 위해서 주민등록번호나 수십년간의 주소 내역이라든가 개인정보를 유포하고 악용하는 것이 드러나는데도 그냥 넘어가면 다른 국민들께도 이런 일이 있어도 당연한 것이 될 겁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언론이 공직자 인사검증을 위해 자료를 공유하고 파고들어 취재·보도하는 것을 “해코지”로 인식한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셈입니다. 한 장관은 다른 국민들이 이런 일을 당하는 상황을 걱정했는데, 그것은 맞습니다. 일반 시민은 공인보다 개인정보라든가 사생활 측면에서 더 철저히 보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아야 하는 고위 공직자가 자신을 일반 시민과 같은 선상에 놓고 ‘피해자’ 의식에 젖어 있는 것은 보기에 안쓰럽습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기본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탓하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강욱 의원실 압수수색에 민주당이 반발하자 한동훈 장관이 한 말입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수사 대상을 ‘가해자’라고 지칭하는 것부터 적절치 않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고,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줄 우려도 있습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이고 현재는 누가 봐도 ‘권력의 2인자’인 인물이 이렇게 ‘피해자’ 운운하는 모습에서 ‘공인 정신’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어저께 MBC 압수수색 들어갔죠? 개인 사생활 보호가 일반인하고 저 같은 정치인이나 혹은 장관 같은 퍼블릭 피겨(Public Figure).
진행자: 공인.
조응천: 누가 더 높은 수준으로 보호가 되어야 합니까?
진행자: 일반인.
조응천: 일반인이죠? 그러면 일반인의 개인정보가 침해가 됐는데 MBC에 압수수색 들어갈까요?
(6월1일 <한국방송>(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한 장관 관련 사건에 적용되는 ‘굽은 잣대’
한 장관은 일반 시민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바로 떠오르는 사례가 있습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몇해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고교 학교생활기록부를 제보받아 공개한 주광덕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현 남양주시장)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장관과 같은 공인도 아닌, 일반 시민의 미성년 시절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입니다. 그때 철저한 수사가 이뤄졌다면 한 장관 말대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경각심을 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이번처럼 강도높은 수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학교 교장과 교직원의 휴대전화·컴퓨터 등을 압수수색이 아닌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했을 뿐 주 의원의 휴대전화·자택·사무실 등은 압수수색하지 않았습니다. 주 의원의 이메일과 통신기록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는데, 그마저 검찰은 이메일 영장만 법원에 청구하고, 통신 영장은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려했습니다. 이메일에서 증거를 찾지 못한 경찰이 재차 통신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2개월 만에야 이를 받아들여 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검찰은 개인정보 유출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했습니다.
기자의 자택, 언론사 뉴스룸, 국회의원 사무실까지 몰아친 이번 압수수색과 너무나 대조됩니다. 최강욱 의원은 참고인 신분인데도 휴대전화와 사무실을 압수수색당했습니다. 같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건인데, 한 장관과 관련된 사건에서 유난히 강도높은 수사가 이뤄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경찰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달 검찰은 2020년 <채널에이(A)> 사건 수사 때 한 장관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정진웅 검사(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를 법무부 징계에 회부했습니다. 검찰은 한 장관을 폭행한 혐의로 정 검사를 기소했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그런데도 징계에 나선 것입니다. 반면 ‘고발사주’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이 끝나지도 않은 손준성 검사(사건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담당관, 현 서울고검 송무부장)에 대해서는 ‘징계 혐의 없음’으로 감찰을 종결했습니다.
이 역시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이상한 조처입니다. 한 장관과 관련된 문제에 이렇게 ‘굽은 잣대’를 대는 일이 잇따르는 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한 장관 휴대전화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니 이번 <문화방송> 기자 압수수색 과정의 황당한 장면도 떠오릅니다. 기자는 당시 상황을 기록한 글에서, 경찰이 대뜸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휴대전화부터 제출하시죠. 한동훈 장관님께서도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협조하셨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여기서 왜 ‘한동훈’이라는 이름이 나왔을까요? ‘한동훈을 위한 수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더구나 한 장관이 압수수색에 협조했다는 것은 사실과 정반대입니다. 아이폰 비밀번호를 감추는 바람에 실질적인 압수수색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 장관은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면서 자신은 압수수색을 어떻게든 회피하고, 일반 시민에 대해선 속옷 서랍까지 뒤지는 과도한 압수수색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검찰과 경찰은 이에 발맞춰 편파적인 수사와 징계의 칼날을 휘두릅니다. 이제 정의와 공정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도 지칠 지경입니다.
보복 수사? 그보다 더 위험한 것
이번 수사선상에 오른 이들이 하나같이 한 장관과 ‘악연’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보복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압수수색을 당한 <문화방송> 기자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으로부터 고발당했고, 2020년 ‘검사 술 접대’ 사건 보도와 관련해서도 한 장관으로부터 3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최강욱 의원도 <채널에이(A)> 사건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한 장관이 스스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건입니다. 두 사람은 국회에서 이 문제로 여러차례 맞부딪쳤습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이런 등장인물들이 아니면 이런 정도의 사안을 가지고 이렇게 압수수색을, 그것도 MBC 뉴스룸에 들어가서 이렇게 압수수색하는 게 가능할까라고 하는 의미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등극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5월31일 <와이티엔(YTN)> ‘박지훈의 뉴스킹’)
이렇게 ‘보복 수사’라는 의심이 제기될 상황이라면 한 장관 스스로 ‘수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는 등 수사와 거리를 둘 법한데, 한 장관은 오히려 수사 필요성을 나서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 문제를 갖고 내가 검찰더러 압수수색해라 이렇게 되면 내가 얼마나 속 좁은 사람이 되느냐, 그건 내 문제 아니냐, 그건 그냥 덮어두시오. 큰 사고가 없었으니까 없는 걸로 하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장관다운 모습이지.”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 6월7일 팟캐스트 ‘정영진·최욱의 매불쇼’)
국가 공권력을 사적인 보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장관은 물론 이런 의도를 부인할 것입니다. 하지만 외관상으로 그렇게 비치기만 해도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이는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자 해악이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증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치열하게 검증 보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관한 수사가 이뤄지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장관에 대한 인사검증이 그러한 최초의 사례가 됐습니다. 이렇게 선례가 만들어졌으니 앞으로 인사검증에 나서는 국회의원·기자들은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과도하게 수사하는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앞으로 진행될 인사검증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불거집니다.
온갖 법 갖다붙여 언론 옥죄는 ‘법 기술’
이번 수사에는 법 기술도 어김없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혐의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애초의 법 취지와 한참 동떨어진 것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 58조는 언론이 취재·보도 등 고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는 경우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59조를 근거로 수사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이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처벌한다면 면책조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59조보다 58조 면책조항이 우선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공직자 검증을 가로막는 게 이 법의 입법 취지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개인정보보호법은 힘없는 개인이 정부나 기업과의 정보공유 시 힘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다. 그런데 막강한 권한을 가진 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실 고급행정관들이 언론을 상대로 형사처벌을 위협하는 무기로 개인정보보호법을 악용하고 있다. 이는 법의 취지에 역행한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개인정보보호법의 면책조항를 억지로 오독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오픈넷, 6월2일 성명 ‘공인 보호를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수사 중단하라’)
한동훈 장관은 지난해 자신의 차량을 따라다닌 유튜브 매체 ‘더탐사’ 취재진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접근금지 명령 등을 법원에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더탐사’의 행위는 언론의 권력감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은 강진구 ‘더탐사’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차례나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당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권력자가 언론의 입을 막는 수단으로 이용해온 명예훼손죄는 물론이고, 스토킹처벌법·개인정보보호법 등 온갖 법을 동원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언론을 겁박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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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외친 ‘자유’는 압수수색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걱정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민주주의가 존립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유를 꼽는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요, 언론의 자유입니다. 전세계 민주국가가 공유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언론 자유의 파괴자가 돼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국무부가 낸 ‘2022 국가별 인권보고서’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방송>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를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비판했고, 윤 대통령 부부 및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명예훼손 혐의 수사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짚었습니다. ‘자유·인권을 공유하는 가치동맹’인 미국의 시각입니다. 한동훈 장관 개인정보 유출 수사에 대해선 내년도 인권보고서에 어떻게 서술될지 궁금합니다.
미국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재·보도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을 하지 말도록 연방 검찰에 지시했습니다.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법무부 장관이 직접 언론을 고소·고발하고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으로 언론사 뉴스룸과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우리나라는 미국 기준으로 보면 미개한 나라일 것입니다.
[논썰] 한동훈을 위한 수사, ‘자유’를 압수수색하다. 한겨레TV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방미 때 미국 의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Freedom is thriving and democracy is robust.”(한국은 자유가 살아숨쉬고 민주주의의 활력이 넘친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자유는 질식당하고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말한 자유는 ‘가짜 자유’일 뿐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압수수색당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