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신소윤의 소소한 TV
“선배 이런 사진 어때요?” 언젠가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취재할 때, 사진부 선배에게 <미사오와 후쿠마루>에 실린 사진 몇 장을 보이며 말했다. 선배는 보자마자 “이런 사진은 누가 옆에서 오랜 시간 밀착하고 교감해야 찍을 수 있는 거야. 한두 시간 인터뷰하는 동안 이렇게 어떻게 찍냐?” 아니, 어떻게 알았지? <미사오와 후쿠마루>는 어느 날 창고에서 발견된 작은 고양이와 8년이 넘도록 일상을 나누게 된 할머니 미사오와 고양이 후쿠마루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이다. 손녀 이하라 미요코가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귀가 점점 나빠져 소리를 잃어버렸고 고양이 후쿠마루는 선천적으로 귀에 장애가 있다. 할머니와 고양이는 서로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없지만 밭에서 흙을 묻히며 함께 일하고 새참을 나눠 먹고 나른한 저녁을 같이 보낸다. 사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지만 글자로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누구는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진집을 넘기다가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고도 한다.
한국에서 여전히 고양이보다 더 친숙한 반려동물은 개다. 가축이 아닌 반려견으로서 조금씩 권리를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도 얻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프로그램도 생긴 것이다. <슈퍼독>(KBS)은 개를 슈퍼스타로 만드는 서바이벌 쇼다. 프로그램이 홍보하는 취지는 이렇다. 반려견의 소중함을 알리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애견 시장에서 문화를 올바로 정착시키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서바이벌 쇼를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고의 모델견 혹은 스타견이 될 만한 개를 뽑는 경쟁의 장이다. ‘뻔한 오디션은 가라!’고 홍보하는 예고편을 보면서 서바이벌 쇼의 틀거리와 올바른 반려견 문화의 정착이라는 취지가, 아귀가 맞는다기보다는 조금 덜컥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저런 사람들과 반려견이 출전해 전하는 이야기들이 공감이나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의 마음도 절반 정도 들었다. 그래서 보았다. 슈퍼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우리 집 개와 함께.
1천마리의 개들이 후보로 올랐다. 온라인 오디션을 통과한 개들이 오프라인 예심을 보고, 무대에 올라 심사위원 노주현, 강타, 최여진 앞에서 본격적으로 예선전을 치른다. 심사 기준은 스타성, 비주얼, 견주와의 호흡과 교감 능력이다. 차례차례 무대에 오른 개들은 견주와 함께 자기소개를 하고, 장기 자랑, 사진 촬영 테스트를 거친다. 보고 있노라니 스튜디오는 어느새 ‘개판’이다. 여러 차례 심사를 거치고 무대에 오른 개들이지만 개는 개다. 개들에게 무대를 장악하겠다는 의지와 목표 따위는 없으므로. 뜨거운 조명과 커다란 카메라가 곳곳에 놓이고, 낯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무대에서 그들은 자연스레 행동하고 서슴없이 즐거워할 겨를이 없다. 사진 찍으러 가자는데 싫다고 질질 끌려가고, 평소 잘하는 장기를 해보라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출연견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는 입장에서는 조금 심심했지만 이 프로그램이 모든 개들이 묘기를 부릴 때까지 집요하게 굴지 않았다는 것. 무대를 어색해하면 어색해하는 대로, 주인은 진땀 흘려도 개는 산만하게 움직이면 그러는 대로 화면에 담았다. 이런 자유로운 연출 방식이 개를 위한 것인지 어쩔 수 없음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어떤 출연자는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강아지 세마리와 부모견을 먼 길 자동차에 태워 무대까지 데리고 나왔다. ‘다행히’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개들을 프로그램에 맞게 훈련시켜 오겠다며 매달리는 출연자를 보며 반려견을 그저 인형처럼 자랑하고 싶어하는 왜곡된 사랑이 불편했다.
<슈퍼독>은 천방지축 혹은 때때로 잘 훈련된 개들을 무대 위에 차례로 올리기만 하면서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올바른 반려견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겠다는 걸까. 교감도 소통도 없는 이 무대는 누구를 위한 오디션일까.
신소윤 <한겨레21>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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