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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남역 골바람 매섭지만 ‘촛불 광장’ 희망에 꿋꿋”

등록 2016-12-26 19:34수정 2016-12-27 01:40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지기 최영숙씨

지난 22일 저녁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최영숙(오른쪽)씨가 시민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최씨는 3년째 거리에서 세월호 서명을 받고 있는 엄마를 프랑스 유학 중인 딸이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저녁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최영숙(오른쪽)씨가 시민들에게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최씨는 3년째 거리에서 세월호 서명을 받고 있는 엄마를 프랑스 유학 중인 딸이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저녁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강남역 서명지기’들이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받고 있다. 이날 시민 90명이 서명대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진상규명 동참을 호소하는 엽서를 썼다.
지난 22일 저녁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강남역 서명지기’들이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받고 있다. 이날 시민 90명이 서명대에서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진상규명 동참을 호소하는 엽서를 썼다.

지난 22일 저녁 8시30분쯤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를 찾았다. 고층 빌딩숲 사이를 헤집는 ‘골바람’이 매섭다. 최영숙(51)씨가 들고 있는 손팻말이 힘없이 뒤집어진다. 올해로 세번째 겨울이다. 지난해 겨울, 최씨의 동료 한 명은 핫팩 40개로 중무장하고 거리를 지켰다. 송년회도 세차례나 했다. 파장 땐 모두 “더 이상 만나지 맙시다”고 인사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강남역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받고 있는 시민들이다. 최씨를 이날 점심 시간에 그의 일터가 있는 서울 서대문역 주변 카페에서 만났다.

최영숙씨.
최영숙씨.
“세월호 참사 때 안산 정왕동에 살았어요. 오의도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퇴근했죠. 열흘 동안은 기차가 단원고가 있는 지역을 지날 때 승객들이 모두 울었어요. 내 아픔으로 다가왔죠. 딸의 친구 동생도 죽었어요. 한달 동안은 밥 먹는 것도 미안할 정도였어요.”

‘페북’ 친구의 권유로 2014년 6월 강남역 서명지기 활동을 시작했다. 페북 계정은 현 프로야구 두산 2군 선수인 아들의 권유로 2013년에 열었다. 서명지기들은 평범한 엄마, 아빠들이 대부분이다. 40대 중·후반과 50대가 주축이다. 많을 땐 150명까지 나오다 지금은 20여명으로 줄었다. “2014년 가을까지 주 6회 서명을 받다가, 총회 투표를 통해 3회로 줄였고 지금은 매주 목요일 오후 7~9시에 서명을 받고 있어요.” 지금 서명지기의 절반 이상은 최씨처럼 초창기부터 참여한 이들이다. “지난해 여름 세월호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플레이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명지기도 줄었죠.”

그는 서명 첫해 ‘최장군’이란 별명을 얻었다. “강남역 골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피켓을 들고 있으면 사람도 날아가요. 저만 안 날아간다고 최장군이라고 부르더군요.(웃음) 그해 겨울에 여자들은 다 병이 났어요. 그래도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많이 나왔어요.(웃음)”

4·16 참사때 안산 살아 더 ‘충격’

그해 6월부터 거리 서명운동 나서

세번째 겨울에도 20여명 11번출구 지켜

“젊은이들 가슴속 ‘분노’ 느껴져요”

‘풀뿌리 시민네트워크’로 전국 활동

진실 인양·책임자 처벌때까지 계속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운동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인천 부평·일산·파주·용인·부산·제주 등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시민들은 지난해 6월 ‘풀뿌리 시민 네트워크’를 만들어 한달에 한차례 집중행동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엽서를 보내고, 노란리본 액자를 전달한 이들도 네트워크 회원들이었다. 네트워크의 행동 강령은 ‘따로 또 같이’이다. 세월호 가족과 단체들의 연대체인 ‘4·16 연대’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풀뿌리 시민운동의 자율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강남역은 젊은이들의 거리다. “초기엔 서명자의 90% 이상이 젊은 여성이었죠. 1년 정도 지나서 남자들도 늘기 시작했어요.” 지난 4월 총선 이후엔 50대와 60대 서명자도 늘고 있다고 한다. “(탄핵 이후) 지난해와 견줘 3배 이상 늘었어요. ‘또 세월호냐’며 욕하는 이들도 거의 사라졌죠. 최근엔 전경들도 서명을 하고, 한 여경은 고생한다면서 핫팩도 주고 갔어요.”

‘그대가 그동안 길에 섰던 게 광장의 촛불로 피었다.’ 최씨가 최근 친구한테 들은 말이다. “우리가 계속 거리에 있었던 게 시민들을 변화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가 아줌마인 저를 변화시켰던 것처럼요.”

그는 지난 22일 서명대에서 두 번 울었다고 했다. “20대 여성분이 서명하면서 유족이냐고 묻더군요. 그냥 엄마 아빠들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이런 일을 하세요’라며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해요. 울컥했죠. 또 20대 남성이 세월호 미수습 선생님이 고교 은사였다면서 정성들여 엽서를 쓰더군요. 눈물이 나왔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지난해 한 청년의 배꼽인사였다. “20대 청년이 그래요. ‘1년 동안 강남역 다니면서 서명 받는 걸 많이 봤다. 한 발을 (서명대에) 돌리는 게 어려웠다. 계속 지켜줘서 고맙다. 오늘 이후로 내가 바뀔 것 같다.’ 서명 뒤에 배꼽인사를 했어요.”

최씨는 서명 초기부터 거리에서 희망을 읽었다고 했다. “젊은이들 마음 속에 있는 저항의 마음을 많이 봤거든요.” 강남 서명지기들은 지난 9월부터 한달에 한차례씩 버스킹 공연도 하고 있다. 최씨도 노래를 부른다. “버스킹을 한 건 (서명만 받는 게) 너무 지겨워서이기도 해요.(웃음)”

84학번인 최씨는 대학 졸업 이후 학습지 교사나 금융사 직원으로 일하며 그의 표현대로 ‘평범한 아줌마’로 살았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그는 시민합창대의 단원으로 지난 10일 7차 촛불 때 광화문 무대에도 올랐다.

서명 활동 뒤엔 서명대나 천막 등 서명 장비를 지하상가의 한 “고마운 사장님” 창고에 보관한 뒤 늦은 저녁을 한다. 3년 가까운 세월이 이들을 ‘베프’로 만들었다. 사업을 하는 한 남성 서명지기의 말이다. “서명대가 언론 구실을 합니다. 피켓엔 새로 나온 세월호 관련 정보들을 담아요. 각 서명단이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것은 언론이 제대로 정보 전달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서명 비품 구입은 월 65만원 가량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서명자에겐 스티커와 노란 리본을, 국회의원에게 보내는 엽서를 쓰면 팔찌를 드리죠.”

이 활동의 시한은 언제까지일까? 최씨는 ‘세월호 인양’을 강조했다. “배 안에 진실이 가라앉아 있어요. 인양하겠다고 해놓고 2년 넘게 흘렀어요.” 그의 동료들도 “진실이 밝혀지고 합당한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 거리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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